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노라면 절망을 넘어 분노가 앞선다. 위장전입, 세금탈루, 병역기피, 논문표절, 자녀 이중국적, 부동산 투기 등등…. 그것도 모자라는지 나랏돈 빼먹기를 예사로 안다. 뇌물로 보이는 수상한 돈거래에다 거짓말도 능사로 한다. 비리백태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다. 힘없는 서민이라면 감방에 가도 수도 없이 가고 남을 짓들을 예사로 저지르는 모양이다. 돈 되는 일이라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들이 고관으로 발탁된다. 더러 낙마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권력자들에게 직무수행비, 업무추진비 말고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특수활동비가 기다린다.
특수활동비는 수령자가 서명만 하면 사용처를 묻지 않는다. 영수증 없이 현금으로 인출해사용이 가능하다. 감사원 결산검사와 국회 자료제출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특수활동을 정보수집, 사건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특수활동과 무관한 정부부처-기관에도 상당액이 배정된다. 사용내역을 밝힐 필요가 없으니 권력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적용도로 쓸 수 있다. 현찰로 뽑아서 제 주머니에 넣어도 누가 알 수 없으며, 모르니 누가 따질 수도 없다. 그 까닭에 특수활동비를 권력자의 '묻지 마 예산', '눈 먼 돈', '쌈지 돈', '비자금'이라고 부른다. 공직사회의 투명도가 낮은데 돈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인물들이 권력자가 되는 세상이니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대충 짐작된다.
특수활동비를 권력자들이 제 주머닛돈 쓰듯 한다는 사실이 독직사건를 통해 간혹 확인된다. 금년 5월 '성완종 리스트'와 얽혀 검찰수사를 받던 경남지사 홍준표가 특수활동비를 유용했다고 실토했다.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자금 중의 1억2,000만원에 대해 그는 당시 여당 원내대표와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하고 있어 매달 나오는 특수활동비 4,000만~5,000만원의 일부를 모았다고 주장했다. 입법로비혐의로 재판을 받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신계륜이 특수활동비를 사적용도로 사용했다고 자인했다. 2012~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맡고 있어 나온 특수활동비의 일부를 아들의 유학자금으로 썼다는 것이다. 2013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이동흡은 헌법재판관 특수활동비를 개인통장에 넣어 사용한 사실이 밝혀져 후보를 사퇴했다.
2010년 8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신재민이 해당부처 2차관 재직중 특수활동비를 개인 유흥비와 골프 접대비로 사용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그 액수가 13개월간 1억1,900만원이었다. 사용내역을 보면 후보자 본인을 포함해 홍보지원국장 등 3명의 이름으로 돈을 인출했지만 그들은 돈을 쓴 적이 없다고 한다. 부하직원의 명의를 도용했으니 허위공문서 작성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신재민은 특수활동비는 어디에 썼는지 공개하지 않는 비용이며 인출한 날짜에 돈을 쓰는 것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갖고 있다가 적재적소에 사용했다는 것이 그의 해명이었다. 그는 결국 후보를 사퇴했다.
2009년 4월 노무현 정권의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상문이 구속되어 실형을 받았다. 혐의는 대통령 비서실의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3∼4년에 걸쳐 빼돌린 뒤 돈세탁을 거쳐 차명계좌에 넣었다는 것이다. 2007년 5월 법무부 장관 김성호가 특수활동비를 사적 접대비로 써서 말썽을 빚었다. 그가 모교인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찾아 학부모, 동문들과 먹은 점심 식사비로 140만원을 썼다. 저녁에는 특급호텔에서 시의회 의장, 부시장, 교육감 등 유력인사들을 초청해 만찬을 가졌는데 숙박비를 포함한 비용이 600만원이나 들었다. 이 모든 비용을 수행비서가 신용카드로 결제했는데 당시 법무부는 특수활동비로 썼다고 밝혔다.
2009년 11월 검찰총장 김준규가 출입기자들과 회식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번호가 적힌 종이쪽지를 돌리고서는 뽑기를 했다. 당첨자 8명에게 50만원이 든 봉투를 하나씩 400만원을 뿌렸다. 이 또한 특수활동비에서 나온 돈이다. 권력자들이 금일봉이라고 이름을 붙인 위문금, 성금은 물론이고 직원 격려비도 특수활동비로 쓴다고 한다. 친-인척, 친지의 경조사비도 이 눈먼 돈을 쓴다고 한다. 정치인이나 출마에 뜻을 둔 고관이라면 선거관리를 위해서도 쓰는 게 뻔하다.
특수활동비는 법적근거가 없다. 단지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라 편성된다. 그런데 특수활동과는 무관한 국회에도 던져주자 돈맛이 들어 관행적으로 추인한다. 새해에도 특수활동비가 금년보다 80억원 많은 8,891억원이나 편성됐다. 국정원 4,862억원, 경찰 1,291억원, 청와대 265억원, 국회 84억원 등이다. 성층권에서는 국민의 피땀이 찌든 세금으로 돈잔치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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