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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감수성과 불우 청소년
[편집자의 글]
 
도형래 기자   기사입력  2018/11/26 [15:21]

'불우 청소년을 위한 바자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은 취지로 열리는 바자회라 생각해 이를 알리는 기사를 썼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이 싸늘했다. 왜 불우 청소년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불우'라는 말이 잘못됐나? 표현이 이상한가? 라고만 생각했다.

 

세세한 이유는 들을 수 없었지만 곰곰이 되짚어 생각해 봤다. '왜 불우라는 말로 청소년을 규정하냐'는 말로 풀이됐다.  

 

영화 '은교'의 유명한 대사가 떠올랐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청소년에게 붙인 꼬리표 '불우'는 그렇게 규정된 청소년이 스스로 잘못해 '받은 벌'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것도, 선택한 것도 아니다. 그냥 사정이 그럴 뿐이다. 

 

이런 청소년에게 어른들은 '불우'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이렇게 규정된 청소년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영화 은교에서 늙은 시인은 학생들을 모아두고 이렇게 호통치며 토로할 수 있었지만 청소년들은 하소연할 대상도 없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이미 인식의 장벽 속에, 동정적인 시선의 감옥에 갇혀 있다.  

 

▲ 올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 (사진=사회복지공동모금회)     © 군포시민신문

 

IMF로 망해버린 나라, 이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등록금 비싼 사립대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대학에서 주는 장학금은 높은 경쟁률과 보잘 것 없는 성적에 디밀어 볼 수도 없었다. 그때 눈에 띄는 장학금을 모 기업에서 주고 있었다. 모 기업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업장려금'이라는 이름의 장학금을 주고 있었다. 이를 '신청할까, 말까' 여러 번 망설였던 적이 있다. 값싼 동정 팔이를 하기 싫다는 어린 자존심과 나보다 어려운 친구들이 있지 않을까하는 망설임 때문이다.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친구들과 얘기하다, '인권 감수성'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인권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식의 말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인권에 대한 일말의 관심도 생각도 없는 인권위 인사를 두고 한 말이었다. 감수성(感受性)의 사전적 의미는 '외부 세계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다. 여기에 대입해 보면 '인권 감수성'은 '인권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불우 청소년'을 두고 이 말이 문뜩 떠오른 건 스스로 '인권 감수성이 무뎌지지 않았을까'하는 반성에서다. 

 

사실 '불우'라는 말의 뜻은 나쁘지 않았다. 불우(不遇)의 한자말은 '만나지 못했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 말을 사전에서도 '때를 만나지 못해 출세하지 못함'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살림이 어려움', '가정 형편이 어려움'으로 사용된다.

 

연말 '불우 이웃 돕기'가 매년 이어진다. 불우 이웃 돕기라는 말을 오랫동안 거부감 없이 사용해 왔고, 많은 파생어를 만들었다. '불우 노인', '불우 청소년', '불우 학생' 등등... 다만 누군가를 그렇게 정의해 동정적인 시선을 내보내기 전에 생각해 봤으면 한다. 

 

굳이 붙이지 않아도 말이 자연스럽다. '어려운' 이웃 돕기라는 말로 애둘러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이웃돕기 성금 모금'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청소년 돕기 바자회'라고 해도 문제가 없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어려운 사람이고, 어렵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불우'를 표제로 광고해가며 어렵게 내민 손길을 '값싼 동정'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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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6 [15:21]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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