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건너 훈춘 땅으로 이주한 밀양 박씨를 만나다

[중국 뤼순(旅順)을 다녀오다_ 첫째 날]

신완섭 인생이모작9988클럽 조합장 | 기사입력 2018/11/11 [08:21]

함경도 건너 훈춘 땅으로 이주한 밀양 박씨를 만나다

[중국 뤼순(旅順)을 다녀오다_ 첫째 날]

신완섭 인생이모작9988클럽 조합장 | 입력 : 2018/11/11 [08:21]

오전 11시 20분 중국남방항공 다롄(大連)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로 채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중국근대사와 우리의 항일투쟁사가 묻어나는 유서 깊은 뤼순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공항에 마중 나오신 박남권 할아버지(이하 박 선생)의 길 안내로 세 번의 전철을 갈아타고 2시간가량 걸려 종착역인 뤼순신항(旅順新港)역에 도착했다.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전철 입구에 놓인 물품검색대. 공항에서나 있을 법한 물품검색이 시내 곳곳의 전철역에서도 시행되다니... 의아스러웠지만 넓은 국토면적에 다수의 민족들이 얽혀 살다보니 생겨난 제도인 듯하다.

 

▲ 뤼순구항의 전경 (사진=위키미디어)     ©군포시민신문

 

이곳은 다롄시 뤼순구(旅順口)에 속하는 신도시라서 여기저기 건설의 흔적들로 어수선한 느낌이다. 박 선생이 거주하는 인근 아파트에 들어서니 그의 아내 여선옥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두 분은 모두 조선족으로 길림성 태생이지만 다롄에 직장을 구한 셋째 딸 내외를 따라 다롄을 거쳐 이곳으로 이주한 지 4년 여 된다 하셨다.

 

방문선물로 가져간 한국산 김과 과자를 비롯해 내가 저술한 몇 권의 책과 안중근의사 옥중집필서적과 그의 부탁으로 한국에서 제작된 밀양 박씨 족보책 등을 꺼내니 배낭이 헐빈하다. 이른 저녁상을 차려주셨다. 맑은 소고기국에 수육, 김치와 마늘장아찌, 무채, 멸치고추볶음 등 영락없는 우리 식 반찬들인데, 샹챠이(香菜)로 맛을 내는 게 차이였다면 차이랄까, 푸짐한 반찬에 마오타이주(茅台酒)를 몇 잔 따라주시니 피로가 싹 가신다.

 

▲ 박남권 할아버지와 여선옥 할머니     © 군포시민신문

 

박 선생은 1942년(향년 77세) 생으로 두만강과 인접한 훈춘 회룡봉촌(回龍峰村)에서 태어나 연길에서 중어(中語)를 가르친 교사 출신이다. 몇 년 전 우리말로 <두만강변에 서린 애환-밀양 박씨의 100년 이주사>란 책을 중국 현지 출판사에서 펴낸 것이 나와 인연이 되었다. 한국에서 돈벌이를 하는 조카 승군씨의 소개로 한국에서 책을 펴낼 경우 내게 출판권을 부여한다는 계약을 2년 전에 체결하였으니 말이다.

 

이 일로 해서 한 번 찾아뵈어야지 하던 차에 올해를 넘기기 전에 찾아온 것이 이번 방문의 이유이다. 그러니까 그는 1909년 다섯 남매와 손주들을 몽땅 이끌고 함경도 경흥 땅에서 두만강 건너 훈춘 땅으로 이주했던 박의도(1864-1925)의 4대째 후손으로서, 현재 7대까지 이어가고 있는 가문의 이주사를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하는 강한 열망을 지니고 있다.

 

우린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며 밤늦도록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미 그의 책을 두 번 읽은 나로선 조선족식 어법이나 표현, 생소한 지리적 명칭 등 궁금했던 내용들을 차례차례 여쭤보았고, 그는 관련 자료집들을 보여주며 나의 이해를 북돋워 주었다. 대화 중 언뜻언뜻 내비치는 가문과 고향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멀리 이역 땅에서 나고 자랐지만 단 한 번도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잃은 적이 없다 하신다. 항일투쟁으로 목숨을 잃은 여러 열사 선조를 두었고, 나라 잃고 남북 분단에 휩싸여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게 된 기구한 가족사에도 불구하고 솟구치는 그의 열정은 마치 밟힐수록 더욱 강해지는 질경이 같다고나 할까.

 

어둠이 깊어갈수록 빛은 밝아지는 법, 내일 뤼순감옥과 법정 등 안중근 의사의 최후 발자취를 더듬어보기로 하였기에 취기가 더 오르기 전에 술자리를 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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