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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칼럼] 가짜뉴스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김동민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   기사입력  2018/11/08 [08:55]
▲  김동민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 

가짜뉴스의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정부와 여당은 규제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학자들과 시민단체는 표현의 자유 위축을 우려하며 반대하거나 신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짜뉴스의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학자들 사이의 대체적인 기류는 진짜뉴스가 가짜뉴스의 가장 바람직한 대책이라는 데로 모아지는 것 같다. 그래야 할까? 언론 출판의 자유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밀턴(John Milton)의 『아레오파지티카』를 보자. 

 

“우리가 진리의 힘을 의심하여 허가와 금지를 하는 것은 유해한 일이다. 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도록 하라. 누가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하게 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진리의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아레오파지티카』의 골자는, 진리가 항상 승리했으므로 정부가 진리와 허위를 판별하지 말라는 것으로 소위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논리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진리는 항상 승리했는가? 궁극적으로 승리하더라도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리는 게 다반사다. 그 사이에 허위가 득세하여 수많은 희생이 뒤따른다. 현실과 유리된 관념적인 사고는 위험하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밀턴과 같은 관념론자들이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도 마찬가지다. 밀은 자유를 ‘권력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설정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회”라는 주장이다. 다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그건 레토릭에 불과했다. 심지어는 아편과 독약의 판매도 “구매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므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진짜뉴스와 팩트 체크를 강화하자는 대안 제시는 “진리의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밀턴의 주장과 판박이다. 국가의 역할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사고방식도 밀의 계시에 충실한 태도에 다름 아니다. 

 

▲ Fake News (사진=픽사베이)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유럽에서 자본주의의 이념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자유방임주의와 개인주의가 그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누리는 주체는 개인이다. 그리고 그 개인은 노동자와 농민을 제외한 자산가들이다. 자유주의 사상가들에게 국가의 제1 역할은 자산가의 재산을 지켜주는 일이며, 로크는 국가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저항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다. 

 

당시 사상가들이 이런 생각을 한 배경에는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다.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 후 자연과학의 발견들은 더 이상 그런 발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기도 하지만 감정의 지배를 더 많이 받는다. 근대 이성의 시대에 내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견(私見)들은 이제 자연과학의 지식에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자연법 사상을 설교한 로크(John Locke)는 “인간은 이성을 좇아 살아가며, 땅 위에서 이들을 재판할 권한을 소유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 곧 자연상태”라고 했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도 그 맥락이다. 이 자연상태라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빚어낸 픽션이다. 공상적 소설의 얘기를 아직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코미디다.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러셀(Bertrand Russel)은 “인간의 모든 활동은 욕망의 소산”이라고 했다. 자유를 지향하는 것도 욕망의 소산이다. 그 욕망은 진화에 의해서 유전자에 새겨진 이기적 본능이다.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자유의 추구도 욕망의 소산임은 물론이다. 그 자체로 존중하되 타인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주거나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는 경우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뉴스는 사라지지 않고 창궐하게 될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욕망을 제어하는 룰을 지켜야 보장되는 법이다. 자연상태나 자연법 따위는 없다.

 

다른 정치상황의 특수한 사례를 들며 규제에 반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완성한 이후 바로 일반상대성이론의 연구에 착수했듯이, 과학은 일반화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가짜뉴스는 가차 없이 박멸해야 할 해충일 따름이다. 

 

표현의 자유에 제약이 없고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민주주의라는 발상도 허구다.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일 뿐이다. 가짜뉴스라 하지 말고 허위정보라고 하자는 의견들도 있다. 그러나 허위정보에 뉴스의 옷을 입혀 유통시키니 그게 가짜뉴스가 아니고 뭔가? 진짜뉴스는 가짜뉴스의 대책이 아니다. 둘은 별개의 영역이다.

 

관념론의 구각을 벗고 변증법으로 사유해야 한다. 그래야 현상(appearance)이 아닌 실재(reality)가 보일 것이다. 어떻게 17세기 서구사상이 아직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하는가? 자연을 보라. 17세기를 호령했던 자유주의 사상은 이제 과학으로 대체되었다. 자연은 변증법의 증거다. 교통신호와 규칙을 지키면서 운전을 해야 자유로운 것처럼 공동선을 의식하여 절제된 표현을 하는 것이 진정한 표현의 자유다. 악의적인 표현에는 제재를 가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정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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