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는 지난 7일 중3 학생들에게 해당하는 202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수능 위주 전형인 정시를 현행보다 확대하고, 국어·수학·탐구 과목은 상대평가를 유지하도록 하는 ‘대학입시제도 개편 권고안’을 발표했다. 당초 교육부가 결정해야 할 일을 떠넘긴 게 1년 동안 20억 예산만 축내고 폭탄이 다시 교육부로 돌아갔다. 이런 교육부는 없는 게 낫다.
이는 지난 3일 발표한 국가교육회의 공론화위원회의 1안(수능 선발인원 비중을 전체의 45%로 높이는 개편안)에 2안(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를 주요 내용으로 한 개편안)을 살짝 섞어서 두루뭉술하게 짜집기하여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 특별위원회가 발표한 것이다. 수시와 정시의 균형을 맞추도록 하고 왜곡되어 있는 제2 외국어와 한자를 절대평가로 하도록 권고했다.
흔히 하는 말로 교육은 ‘국가백년지대계(國家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그래서 정부는 백년이 가는 교육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국가교육회의를 구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2017년 12월 12일 위원 구성을 마친 후 지금까지 한 일이 대입제도 개편안을 만든 게 전부다. 홈페이지를 봤더니 백년지대계는 고사하고 1년 계획도 없다. 위원 구성을 보니 알 것 같았다.
적폐(積弊)란 오랫동안 쌓여있는 뿌리 깊은 폐단을 말한다. 이 폐단을 청산하자는 게 촛불정신이고 이 정부의 과제다. 그러면 이 정부는 적폐 청산의 적임자인가? 점점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국회의장이란 사람은 적폐청산작업이 길어지면 피로감이 올 수 있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적폐청산이 지지부진한 현실에 피로감이 쌓여간다. 대통령이 바뀌고 장관이 새로 임명되었지만 관료사회의 적폐는 그대로다. 관료들을 당차게 다스려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장관이 있는가? 교육부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입시제도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현재 우리 교육에서 본질은 아니다. 어느 분야든지 제도개혁에 일로매진하는 관성은 타파되어야 한다. 보다 더 중요한 본질적인 사안은 교육의 내용이다. 특히 대학에 진학해서 무슨 공부를 하느냐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그게 없다. 무엇을 채울지의 고민은 없고 무슨 그릇에 담을지 논란만 하고 있는 꼴이다.
대학이란 큰 인물을 만드는 배움터(大人之學)인데 재능 있는 인재들을 모아다가 소인배를 만들어 배출하는 게 현실이다. 교육부 관료들은 이런 고민은 없고 대학을 자기들의 밥줄로만 여긴다. 교육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장관은 존재감도 없다.
교육부는 6월 29일 대입정책포럼에서 ‘2022학년도 수능과목 개편안’을 내놓았는데, 이에 따르면 이공계열로 진학할 학생이라도 수능을 보기 위해 ‘기하학’을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고, 과학도 ‘과학I’에 해당하는 네 과목만 공부하면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교육부는 앞서 2월에는 2021학년도 수능 수학 과목 출제범위에서 ‘기하학’을 제외하기도 했다. 기하학과 과학II가 실종된 것이다.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서 관료들, 그리고 국가교육회의 구성원들이 기하학과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과학 전공자들로 채워져 있는 데서 예상할 수 있는 재앙이다. 교육적폐가 낳은 교육재앙의 연속이다.
기하학은 이공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필수 학문이다. 플라톤이 제자 양성을 위해 아카데미아를 개설했을 때 기하학 공부가 안 되어 있는 자는 지원도 하지 말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수학과 기하학은 이데아의 세계로서 보편적 지식을 추구한다. 감관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성의 세계를 다루는 것이다.
이를테면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된다고 하는 오늘날 요구되는 융합형 지식과 창의성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기하학은 운동선수로 치면 기본기에 해당한다. 대한민국 축구처럼 기본기를 익히지 않고 승부사로만 조련하면 실력도 늘지 않고 오래 가지도 못한다. 자연과학의 지식과 담을 쌓고 있는 사회과학도 마찬가지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는 우리 학생들의 수학실력을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공론화위원회의 1안과 2안이 오차범위 안에서 1위와 2위를 했다는 사실은 공론화위원들에게 학종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름 집단지성의 결론이다. 현실을 무시하고 잘못된 관성에 따른 주장과 행동을 고집하는 태도는 자제되어야 한다. 제도보다는 내용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어떤 제도든지 기를 쓰고 돌파해 대학에 가봐야 그다지 배울 게 없다.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별로 실용적이지 않은 공부를 강요당하는 반면에 정작 인생에 도움이 되는 진지한 학문은 대학에서 접하기 어렵다. 이 마당에 교수들이 대학을 팽개치고 떠나 감당도 안 되는 장관을 하고 교육감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니 머지않아 대학입시제도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줄 세우기 평가로 대학을 망친 주범 중의 하나인 중앙일보도 21세기 학생에 19세기 교육이라며 2030년이면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현실이다.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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