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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칼럼] 제주의 난민 혐오에 대하여
 
김동민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   기사입력  2018/07/03 [10:05]
▲   김동민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   

제주에 찾아온 예멘의 난민들에 대한 혐오 반응이 심상치 않다. 유럽이 시리아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는 뉴스를 접하면서도 먼 나라의 일로 여겨지던 터였다. 그 먼 나라의 일이 우리의 일로 다가왔다. 사실은 이미 많은 난민들이 있다. 난민법도 있고, 인도적인 차원에서 수용하면 될 것 같은데 반대가 만만치 않다. 왜 그럴까? <한겨레 21>에 실린 박권일 사회비평가의 진단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적확히 짚었듯이, 사회모순에 대한 구조적 해결책(제도와 정치)도 개인적 해법(자기계발)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좌절한 사람들은 ‘상상의 해결책’을 요구하게 된다. 상상의 해결책은 이성이 아니라 편견에 의존한다. 이를테면 ‘현저성 편향’(salience bias)이 나타나는 것이다. 현저성 편향은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현저하게 드러난 단서를 사건의 원인으로 여기는 인지적 착각이다.”

 

이를테면 만만한 대상을 골라 불만을 표출시킨다는 것이다. 그 만만한 대상이 ‘간첩’이었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인종차별’과 ‘난민혐오’로 나타났으며, 그 본질은 사회경제적 불안과 직결된 저항이면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시민적 요구라고 진단한다. 그럴까? 어쩌면 이게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판단일는지 모른다. 이런 것들도 나름 설득력이 있을 수 있으나 과학적 근거라는 측면에서는 거리가 멀다. 다른 의견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 난민 캠프 (사진=픽사베이)  

 

과학자들이 객관적 진단을 해주어야 해법도 찾을 수 있는 법인데, 상대주의 차원의 주관적 의견들이 난무하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바우만이 적확히 짚었다는 것이 사실은 ‘상상의 해결책’일 수 있다. 주관적 의견은 과학이 아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경향신문 기고에서 “이방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한 사람의 인간됨을 짐작”할 수 있으며, “난민을 다루는 법을 보면 국가의 품격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7월 2일자 칼럼, 이방인을 ‘혐오’하는 언론들) 그럴까? 지구상에 난민을 환영하는 품격 있는 나라와 국민이 몇이나 될까? 호주의 하워드 총리는 2001년 노르웨이 선박을 타고 호주 해안에 접근했던 난민 4백여 명의 입국을 불허했고, 재선에 성공했다. 지금 우리는 호주 정부 및 호주 국민들과 얼마나 다를까?

 

유럽의 나라들은 대개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편인데 그곳도 평안하지는 않다. 유럽은 역사적으로 이방인들과 지내는 게 익숙하다. 근대 이후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경영도 하고 이방인들을 노예로 부리기도 했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이민을 장려하기도 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상존한다. 

 

난민 문제는 사회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능의 문제다. 사회과학은 나타난 결과로서의 사회현상에 천착할 뿐 그런 행동을 하는 인간의 본성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 등에 답이 있는데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박권일은 제주 예멘 난민 사태 이후 배타주의가 폭발하고 있다면서 도덕적 비난 대신에 혐오에 숨은 시민적 요구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건 사견(私見)일 뿐이다. 소크라테스 같으면 억측(doxa)이라고 했을 것이다. 배타주의란 진단도 누구나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현상일 뿐 본질은 집단주의다.

 

집단주의는 원시사회에서 형성된 인간의 본성으로서 다른 집단에 대한 경계와 혐오(xenophobia), 그리고 종족에 대한 대량학살(genocide)로 발전한다. genocide는 인종을 뜻하는 그리스어 genos와 살인을 뜻하는 라틴어 cide의 합성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는 얘기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문명 이전의 수렵과 채취경제 시대에 적응되어 있으며, 지식의 측면에서는 근대의 과학혁명 및 계몽 이전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과학보다는 미신, 이성보다는 본능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배울 만큼 배웠다는 사람들이 황당한 기적을 믿고 ‘상상의 해결책’인 신에게 의존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스(Hank Davis)는 그의 저서 『양복을 입은 원시인』에서 책의 제목 그대로 양복을 입은 원시인이라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미신이나 외국인 혐오증, 국수주의, 전쟁, 테러, 종교 갈등의 배후라고 설명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진화의 속도는 매우 느리기 때문에 500만 년을 자연선택에 의해 생존하면서 새겨진 구석기인의 유전자가 현대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이라는 사실이다.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은 이러한 진실을 모른다. 천체물리학자 세이건(Carl Sagan)의 탄식이다.   

 

“우리는 사회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과학과 기술에 심대하게 의존하는 범세계적인 문명을 만들어버렸다. 한편 우리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과학과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재앙의 처방전이다.”

 

언어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인 핑커(Steven Pinker)는 인간 본성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를 강조하면서 인간에게는 타고난 본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수렵채취경제에 잘 적응된 몸과 마음을 장착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침팬지도 동종학살을 감행하지만 인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더구나 인간은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집단학살이 가능하다. 동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하여 죄의식 없이 동종에 대해 집단학살을 자행한다.

 

역사는 인류의 무수한 집단학살을 증명하고 있다. 그것을 합리화하는 데도 능수능란하다.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서 베트남전쟁을 합리화하는 식이다. 제노포비아는 제노사이드의 전조다. 호주만 해도 230년 전 영국의 죄수들이 태즈메이니아 섬에 거주하던 종족들을 멸종시키고 대륙의 원주민들을 학살하면서 세운 나라다.

 

유엔도 있고 언론의 감시도 있어서 인권의식과 윤리규범이 생겨나 나아지고는 있으나 아직 멀었다. 제주 난민들을 챙기는 시민들을 격려하지만 걱정하는 시민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사회과학적 접근보다는 생물학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외부인과 다른 집단에 대한 배척은 새롭게 나타난 사회현상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다. 여기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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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가 나온순간부터 거른다.1 123 18/07/0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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