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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 탄자니아] 부리야트인을 만나다
더웠던 그 겨울의 기록 (8회)
 
신선임 안산선부중학교 교사   기사입력  2018/04/04 [07:20]

편집자주] 속달동 주민 신선임 씨와 아이들 김형준, 김혜린의 아프리카 여행기를 매주 수요일에 13회 연재합니다. 지난 1월 4일부터 27일까지 24일간 '더웠던 그 겨울의 기록'이 펼쳐집니다. '잠보'는 '안녕'이라는 인삿말입니다.

 

연재_1. 가자! 탄자니아로 2. 탄자니아에 도착 3. Mangrove Lodge 4. Village Tour 5. 마꼰데 부족의 성년식 6. 노예 시장 7. 잔지바 피자 8. 부리야트인을 만나다 9. Maweni Farm 10. Lars Johansson 11. 모시 Moshi 12. Malik 13. Masaai


 

페리를 타고 잔지바를 떠나 원래 항구도시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탕가로 갈 예정이었으나 다르에 대해 다들 걱정한다. 우리가 묵은 숙소 힐리키 하우스hiliki house의 매니저 이브라힘Ibrahim은 눈을 크게 뜨고

 “그 짐을 지고 애들 둘을 데리고 우봉고로 가겠다고요?”

 인도 아주머니 루마는

 “거기는 탄자니아가 아니에요. 얼마나 hectic 한지...”

나의 걱정을 탕가Tanga에서 머무를 홈스테이 주인 바이르마Bairma에게 전했더니 “탕가는 조용하고 안전한 마을이에요. 페리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우봉고 버스 터미널로 바로 가세요. 탕가로 가는 버스가 오후에도 여러 대 있네요. 꼭 라트코 버스를 타세요. 우봉고 터미널을 조심하시구요.”

 

이윽고 페리에서 내려 우버 택시를 검색하고 있는데 여러 명의 기사가 우리를 붙든다.

 “우린 우버를 탈거야.”
 “우버에서 검색된 만큼으로 해 줄게. 2만 실링.”
 “아니 1만 실링.”
 “안 돼. 거기는 외곽이야. 30분은 걸린다고. 1만 5천.”
 “1만 3천”
 “에이, 안 돼.” 

 그 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래요, 그냥 1만 5천에 가요. 터미널에서 라트코 버스 회사 사무실 앞에 내려 주세요.” 

버스 티켓은 반드시 공식 매표소에서 끊으라고 하던 사람들 말이 떠올랐다.

 “알았어. 걱정 마.”

 

▲  다르에스살람으로 가는 페리에서 잠든 아이들

 

드디어 터미널에 도착하는데 비가 퍼붓고 있다. 택시 운전사가 버스를 있는지 알아보겠다며 나가더니 잠시 후에 돌아온다.

 “오늘 라트코 버스는 예약이 끝났대. 심바 버스를 타고 가.”  이러면서 내리라고 한다.
 “그럼 버스 매표소에 데려다 달라 구요.” 
 “똑같아. 버스 타서 티켓 끊으면 되잖아.”하며 버스를 타라고 종용한다. 애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는데 어느새 짐은 내 손에서 벗어나 있다. 버스 차장이 버스비를 내라는데 가만히 보니 택시 운전사가 차장 옆에 서 있는 거다.
 ‘이 사람들 뭔가 꿍꿍이가 있는데...’
 “너희 셋이 10만 실링 줘.” 얼른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1인당 13000실링 이라고 한다.
 “1인당 13000실링이라며? 아이들은 반값이지? 두 명이서 반반. 26000실링 줄게.” 내가 한 술 더 뜨자 어이없다며 고개를 절래 흔든다.
 “애들도 가격이 똑같아 39000실링이야.”
 ‘진작 그럴 것이지. 한국 아줌마를 몰라보고 속이려 들다니...’
 그 때 내 짐을 뺏어서 5미터쯤 들어 준 사람이 나타났다.
 “짐 들어줬으니 돈을 주셔야지.” 1000실링을 주자 물러갔다. 저기서 아이들과 노닥거리던 치가 다가온다.
‘뭐야, 애들하고 놀아줬다고 돈 달라는 거야?’ 우리말로 계속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느물거리는데 쉽게 물러갈 기색이 아니다. 한국 아줌마도 지지 않는다. 어차피 너도 영어 못하니까 한국말로 밀어보자.
 “아, 진짜 도대체 왜 그러는데... 이제 좀 그만하라고...” 이 사람들과 상대하려니 버스가 떠나기 전부터 지쳐 버린다.

 

▲ 공원에서 즐기는 바우게임  

 

9시 30분에 출발한 버스가 탕가에 6시쯤 도착했으니 8시간 넘게 버스를 탔다. 탕가에서는 관광이나 특별한 일정 없이 무조건 쉬기로 했다. 숙소의 안주인 바이르마는 시베리아의 부리야트인이다. 부리야트 사람을 여기서 만나다니...

 

부리야트인은 시베리아의 유목 민족 중 몽골족으로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인과 조상이 비슷한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인구가 오십 만쯤 되는 사라져가는 민족이기도 하다. 내가 반가워하자 부리야트인을 아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며 좋아한다. 예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몽고 내륙열차가 교차하는 지점인 부리야트의 수도 울란우데 여행을 계획한 적이 있어서 부리야트를 알고 있었다.

 

이르쿠츠크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환 바이칼 열차를 타고 한민족의 시원이라 불리는 알혼 섬도 돌아보고 8시간 기차를 타고 부리아트까지 둘러 볼 생각이었다. 부리야트인을 처음 만나는 한국사람 누구나 외모에서 친근감을 느낄 것이다. 일본인도 중국인도 아닌 영락없는 한국인의 외모이다. 가족 사진첩을 꺼내어 보여주는데 엄마와 이모를 찍은 흑백 사진을 보니 꼭 우리 엄마와 이모 사진 같아 양해를 받고 사진을 찍었다.

 

▲ 바이르마의 어머니와 이모 사진  

 

우리는 애들을 재우고 하던 얘기를 이어 갔는데 바이르마는 정말 놀라운 여성이었다. 부리야트 대학에서 영어와 독일어를 전공하고 졸업 후 이스탄불에 가서 PhD를 마쳤다고 한다. 이스탄불 대학에서 독일어로 쓴 논문 주제는 ‘계몽 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독일 여행서에 나타난 부리야트인의 정체성 문제’이다. 논문을 쓰기 위한 자료 준비차 독일 대학에서 2년을 머물렀고 이스탄불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작년에 남편의 고향인 탄자니아 탕가까지 오게 된 것이다.  바이르마는 pentalingual이다. 러시아어, 독일어, 영어, 터키어, 스와힐리어까지...


“어떻게 서로 연관성도 없는 이 언어들을 자유롭게 말하고 쓸 수 있는 거죠?”

“제가 언어적 감각을 타고난 것 같아요. 기억력이 우선 좋고 새로운 언어 배우는 것이 즐거워요. 나를 닮아 음캉가Mkanga도 언어 감각이 있어요. 5살이지만 터키어, 영어, 스와힐리어 trilingual이에요.”
“모국어인 러시아어는 못 가르쳤군요?”
“맞아요. 지금도 화가 나거나 흥분할 때면 러시아어가 불쑥불쑥 튀어 나올 정도로 러시아어는 제 모국어인데 이스탄불에서 음캉가를 낳았을 때 제가 너무 바빴거든요. 러시아에 한동안 가지 않았으니 한참이나 쓰지 않기도 했고요. 그게 너무 아쉬워요. 아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지 못한 게... 부리야트어는 말할 것도 없고요. 러시아어는 아주 어려운 언어 중 하나에요. 직접 러시아를 가야만 배울 수 있죠.”  “중국어와 일본어를 읽지는 못하지만 어지간한 말은 할 수 있어요.”


“그럼, 바이르마. 한국어 문자 한 번 배워 볼래요? 하루만 연습하면 모든 한국어는 다 읽을 수 있어요.”
“좋아요. 가르쳐 주세요.” 나는 우리말의 자음 모음과 영어 발음 기호를 각각 적어 주었다. 바이르마의 눈빛이 빛나면서 집중하기 시작한다.
“같은 몽골 어족이라 부리야트 언어와 닮아 있네요. 우리말은 러시아어와 달리 자음이 겹쳐지지 않아요. 예를 들어 Buriat를 발음할 때 러시아어는 Briat라고 하거든요. 음, 그러니까 Seonim의 이름이 '세언임'이 아니라 '선임'이군요.”
“네, 그게 제 이름이에요. 고마워요, 바이르마” 

 

“부리아트인들은 무슨 종교를 갖고 있어요?”
 “울란우데는 러시아 불교의 중심지에요. 티벳의 수도승들이 다람살라와 울란우데를 번갈아 오가며 공부하고 가르치기도 한답니다.”
 “그러니까 라마불교군요. 바이르마는 어때요. 종교가 있나요?”
“딱히 없어요. 엄마는 불교였고 아버지는 막시스트였어요. 아버지는 막시즘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할 거라는 이상에 도취해 있었어요. 열렬히 신봉하셨죠. 사진첩을 가득 채운 군인 복장의 아버지 사진은 삼각대 등 유럽에서 산 장치로 직접 찍은 셀카에요. 하지만 소비에트가 무너진 후 경제적인 궁핍까지 겹치면서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어 했어요. 아버지뿐만이 아니에요. 부리야트 남자들은 실업자가 되고 희망을 상실한 채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한 대신 여자들이 가정을 꾸려야 했어요.

 

▲  바이르마의 집에서 가족들과

 

우리 부리야트인들은 원래 평화롭고 싸우기 싫어하는 민족인데 사람들이 많이 거칠어졌어요. 지금 공화국에만 25만 명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사라져가는 민족이 되어가고 있어요. 엄마는 위암으로 먼저 돌아가셨고 아빠도 폐암으로 돌아가셨죠. 두 분 다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어요.” “저는 종교가 딱히 없지만 제 인생에서 무언가 강력한 것이 있음을 느껴요. 선임처럼 저도 고민을 오래 하지 않아요. 결정을 빨리 내리는 편이죠. 저를 움직이는 강력한 힘에 맡겨 버리거든요. 아버지 일도 그래요. 여권 만료 일자가 얼마 남지 않아, 러시아로 가야 했죠. 그 때 임신 6개월이라 비행기 타는 것을 다들 말렸어요. 그런데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 날 아침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거예요. 그게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어요. 지금도 그 때 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해요.”


물론 똑똑하고 개방적인 그녀의 주도적인 힘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오빠가 9개월 때 사망한 후 아버지의 임지였던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외동으로 자라다가  소비에트 해체 후 부모님을 여의고 멀리 아프리카까지 오게 된 그녀에게서 러시아 연방 내 공화국으로, 중국 내몽골 자치구로, 몽골 공화국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부리야트인의 디아스포라가 느껴졌다.  20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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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04 [07:20]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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