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미투운동이 끝없이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성폭력 문제는 특정 분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있었다는 실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최근까지 역사적 사건(?)들이 폭로되고 있다. 특히 원로 문인, 예술인에서 깨끗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정치인까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해 준다. 또한 끝내 조민기씨의 자살까지 이어지는 안타깝고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디가 끝일까, 왜 이런 현상이 만연되어 있는 걸까.
한국사회의 성폭력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불거져 나타난다고 본다. 첫째는 수신(修身)의 문제이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인격도야와 관련된 문제이다. 미투운동에서 드러난 가해자들은 각 분야에서 나름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수십 년간 쌓아올린 전문가로서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 왔다. 그러나 이에 상응하는 인격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들의 실상은 ‘전인적 존재’가 아니라 ‘도구적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전문가가 지배하는 현대사회는 특정 분야의 지식과 능력을 갖춘 ‘든사람’만 요구할 뿐, 인격체로서의 ‘된사람’은 그다지 중요하게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아니 인격적 결함은 화려한 전문성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게다가 언론은 종종 이를 극단적으로 미화시키곤 한다.
둘째는 불균형적 권력관계의 문제이다. 이는 사회적 제도차원에서 드러난 악습이다. 미투운동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이원구조로 정형화되어 있는데, 이는 곧 지배자와 피지배자 구조에 다름 아니다. 또한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권력구조를 반영한다. 이것이 만연되어 있는 것은 수직적 유교문화의 잔재와도 관련된다, 한국의 민주사회, 평등사회의 천박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권력관계는 특정 개개인 차원에 한정되어 드러나는 문제가 아니라, 조직적 제도적으로 잠재되어 있다. 따라서 지배적 위치에 있는 사람 모두가 이런 범죄행위에 쉽게 빠지곤 한다. ‘험악하게 보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선량하게 보이는 사람’도 종종 가해자로 드러난다. 한국사회는 특정집단, 특정인이 지나치게 권력을 독점내지 향유할 수 있는 사회이다. 명목상의 제도 차원에서가 아닌 실질상 관습상의 현실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이를 규제할 사회적 제도적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미투운동은 무엇보다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일깨워준다. 즉 진정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도구적 소통관계가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도구적 관계가 제도적 차원에서는 미시적 개선에만 그칠 수 있다. 따라서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구성원 개개인의 인격이 높이 고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한 방편은 우리사회의 전통적 가치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수신(修身), 인격수양(人格修養), 수기치인(修己治人) 등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 보는 것이다. 아니면 시간 날 때마다 잠시 선객(禪客)이 되어 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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