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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하되 잊어서는 안된다...난징대학살기념관
60대 젊은 노인의 중국 배낭 여행기(6)
 
이진복   기사입력  2018/03/07 [08:34]

23일(화) 아침, 오랜만에 푹 잔 것 같다. 일어나 커피 한잔을 하고 사진을 신문사 편집부 단톡에 보냈다. 오늘까지 데이터 로밍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침을 난징 첫 번째 날에 먹었던 훈둔(만두)를 다시 시켜 먹었다.

 

▲ 난징대학살 사실전    © 군포시민신문

 

용서는 하되 잊어서는 안된다...난징대학살기념관

치옌룽이 모바일로 차를 불러 난징대학살기념관으로 갔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그해 11월 상하이를 점령하고 장제스(蔣介石)가 수반이었던 국민정부의 수도 난징 공격에 나섰다. 국민정부는 곧바로 난징을 포기하고 우한(武漢)을 거쳐 충칭(重慶)으로 피신했으나, 군 사령관 탕셩즈(唐生智) 장군은 항전을 주장하며 일본군의 투항 요구를 거절했다. 일본군은 그해 12월 10일 난징 공격을 시작한 뒤 3일 만인 12월 13일에 난징을 점령했다.

 

▲  난징대학살기념관 이모저모    © 군포시민신문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중국군 포로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잔인한 학살을 저질렀다. 성 외곽이나 강가로 끌고 가서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죽였고, 총알을 아끼겠다며 산 채로 땅에 묻거나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워 죽이기도 했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병사들의 총검술 훈련을 하기도 했다. 1937년 12월 13일 오늘날 일본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의 전신인 《도쿄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에는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와 노다 쓰요시(野田毅)라는 두 명의 일본군 소위가 누가 먼저 일본도로 100명의 목을 자르는지를 놓고 겨루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는데, 이는 난징에서 일본군이 벌인 학살과 만행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난징대학살이 진행되는 동안 프랑스 출신의 예수회 신부인 로베르 자퀴노(Robert Jacquinot de Besange)는 서방국가들의 공관을 중심으로 안전구역(Safety Zone)을 만들어 중국인을 보호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과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 등은 난징에서 탈출한 서방 언론인들의 전언을 기초로 일본군의 만행을 보도했다.

 

12초마다 1명씩 죽어...6주간 30만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뒤 1946년에 도쿄(東京)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는 난징대학살의 피해자 규모를 15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하지만 난징대학살 당시 국제적십자사·세계홍만자회(世界紅卍字會)·숭선당(崇善堂) 등 8개 구호단체들에서 수습해 매장했다고 보고한 시신의 숫자만 약 19만8천여 구에 이른다. 따라서 강에 던져지거나 매장되어 발견되지 않은 시신의 숫자를 고려하면 피해자 규모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30만 명 이상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몇만 명 정도로 피해자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극우세력의 경우에는 아예 난징대학살 자체가 날조된 거짓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전쟁범죄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 극우세력의 태도는 양국간 역사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  난징대학살기념관의 300000    © 군포시민신문

 

기념관에 들어서면 천정에 300,000이란 숫자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중앙 홀 스크린에서는 대학살로 희생된 실제 인물들의 사진이 방영되고 있다. 구체적인 학살 증거들이 사진과 사용된 물품과 유품, 글로 설명돼 있다. 1층 전시관이 끝날 즈음 중국계 미국인 작가 아이리스 장(Iris Chang 張純如)을 소개한다. <난징대학살>이란 책을 써서 일본으로부터 끊임없이 살해 위협을 받았던 그녀는 결국 36살의 나이로 자살했다. 기념관 모퉁이에서 12초마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대학살이 벌어진 6주간 30만 명이 12초마다 한 명씩 죽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  만인갱 발굴 현장   © 군포시민신문

 

기념관 밖에 있는 만인갱(萬人坑)은 수백여 구의 유해가 발굴된 현장을 보존해 놓은 곳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투성이의 역사,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에 남경대학살 기념관을 만들었다. “과거의 일을 잊으면 미래가 없다”그렇기 때문에 “용서는 하지만 결코 잊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표현된 것이 난징대학살 기념관이다.

 

영락제 차남 주고후의 저택...총통부

3시간 정도 기념관을 보고 총통부(總統府)로 갔다. 총통부 원래는 명나라 제3대 황제인 영락제의 차남 주고후(朱高煦)의 저택이었다. 청나라 때 강희와 건륭제가 강남 순방시 행궁으로 사용했고, 1851년 태평천국을 이끈 홍수전이 이곳에 천왕부(天王府)를 지으면서 ‘중국 근현대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훗날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의 임시 대총통이 된 손문과 국민당의 장제스도 공산당에 쫓겨 타이완으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이곳을 공관으로 사용했다. 1998년에 ‘난징 중국 근대사 박물관’이 되었다.

 

▲  총통부 모습   © 군포시민신문

 

총통부라고 적힌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면 크게 3구역으로 나뉜다. 중축선을 따라 국민당의 총통부가 이어지고, 서쪽에는 손문이 임시 총통 시절 업무를 보던 사무실과 비서실 등이, 동쪽에는 행정원 등이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천하위공(天下爲公)’편액이 걸린 중국풍 장랑이다. 장랑을 따라 동쪽 구역열 관람하면 태평천국 운동으로 난징을 점령한 홍수전이 신하를 접견하고 예식을 거행했던 천왕보좌(天王寶座)가 흥미롭다. 또 눈여겨볼 곳은 중축선 맨 끝에 있는 자초루(子超樓)와 서쪽구역에 있는 후원이다.

 

육조고도...육조박물관

총통부를 보고나서 그 옆에 있는 육조박물관(六朝博物館)으로 갔다. 3세기 초부터 6세기 말까지 동오(東吳)•동진(東晋)•송(宋)•제(薺)•양(梁)•진(陳)을 합쳐 ‘육조(六朝)’라 하고, 모두 지금의 난징에 도읍을 세웠다 그래서 난징을 ‘육조고도(六朝古都)’라 부르기도 한다. 육조 시대의 난징은 인구 백만 이상의 세계 최고 도시로 고대 로마 제국과 함께 ‘세계 고대 문명의 중심지’였다.

 

▲  육조박물관 백제와 교류관계를 볼 수 있다   © 군포시민신문

 

육조박물관은 육조시대의 문화를 가장 체계적으로 반영한 테마 박물관이다. 육조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박물관의 설계에 있다. 전시 홀은 정원(庭园) 양식으로 설계되었으며, 전시 홀 내부에는 실제 벽이 거의 없으며, 그 대신 대나무와 연 잎 등의 식물을 사용하여 내부를 나누었다. 그리고 조명을 사용하여 박물관 내부를 시각적으로 트인 듯한 느낌이 들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색다른 경관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문물을 진열해 놓은 진열장도 빛이 반사되지 않는 유리를 사용하였다. 미국PPA社(Pei Partnership Architect)가 설계한 총 면적이 22,000㎡에 달한다. 내부전실은 <육조제도(六朝帝都)>, <천고풍류(千古風流)>, <육조풍채(六朝風采)>, <육조인걸(六朝人杰)> 의 네 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다른 공간에는 육조(六朝) 시대의 성벽 유적지와 지하 배수관이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인 육조(六朝) 시대의 자기와 토우 등이 있다.

 

드론 수리...DJI 강남지사

총통부와 육조박물관을 보고 있는데 DJI 강남지사에서 이 사장 드론이 수리되었다는 연락이 와서 DJI 강남지사가 있는 건물로 가서 샤브샤브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 DJI 강남지사에 가 보니 수리된 드론뿐만 아니라 드론 밧테리도 수리할 수 있다는 기술자의 말을 듣고 택시를 타고 여관으로 와서 드론 밧테리를 갖고 와서 수리를 할 수 있었다. 왕복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난징에서 이 사장 드론에 관한 모든 것을 수리할 수 있는 행운이 되었다. 

 

▲  부자묘 근처 서민들이 먹는 식당에서   © 군포시민신문

 

여관으로 돌아와 치옌룽이 쓴 모바일 돈과 수고비를 정산해 주고 저녁을 먹으로 갔다. 중국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잘 먹을 수 있었다.

 

내일은 귀국하는 날이다. 오전에 첨원(태평천국박물관)을 보고 공항으로 가면 이번 중국여행의 일정을 마무리 하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빠진 것은 중산릉을 답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예상했던 계획은 거의 다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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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07 [08:34]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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