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7일차는 일요일이라 라우터부르넨 밸리하우스에서 하루를 푹 쉬었다. 아무리 여행 중이라도 일요일은 쉬어야 한다.
<인터라켄에서 몽생미쉘까지>
여행 8일차.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채비를 했다. 오늘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장거리를 가게 된다. 인터라켄에서 몽셍미쉘까지!
꼭 지키리라고 짠 루트는 아니었지만, 우리 예정 루트는 이곳 스위스에서 남프랑스를 지나 니스, 모나코까지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루아르 고성지대를 지나 몽셍미쉘 보고 파리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그것은 순서에 불과한 것이었고, 12일 귀국 비행기를 타려면 이제 두 밤 남았다. 그 중 하룻밤은 파리에서 자야할 것이고 그러면 여행지에서의 밤은 딱 하루! 그 밤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 그곳이 바로 몽셍미쉘이었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의 몽셍미쉘까지! 서유럽 몸뚱아리를 완전히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것이었다. 지도상으로 대략 판단한 거리 800km. 예상 주행시간 8시간! 그러나 이것이 엉망나 허황된 생각이었나 하는 것을 판단하는 데는 불과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
그건 바로 우리가 스위스 산악지대를 국도로 달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두운 새벽 6시 45분. 누적 킬로수 5842km에서 우리의 대장정은 시작되었다.
라우터부루넨에서 내려와 11번 국도를 찾았다. 잘못하면 베른으로 북향하는 수가 있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길을 찾았다.
즈바이짐멘(Zweisimmen), 싸넨(Saanen), 샤또도엑스(Chateau-d'Oex)를 지나 아이글(Aigll)까지. 지도 상에서 보면 얼마 안되는 거리였지만 산길로 이어진 길을 오다 보니 벌써 9시 45분. 출발 3시간이 지나버렸다. 엄청난 산길이었다. 이제 평지로 돌아와 레만 호수가 보인다. 몽트뢰에서 호수 길을 따라 로잔으로 가는 길이 무척 아름답다고 하여 고속도로를 택하지 않고 국도 1번을 탔다. 그러나 경치 구경할 마음이 아니다. 대충 1시간이면 가리라고 계산한 길을 오는데 3시간이나 지났기 때문이다.
10시 18분. 출발 후 3시간 33분. 베베이에서 국도를 버리고 A9번 고속도로로 올라섰다. 레만호수를 왼쪽으로 끼고 돌면서 속도를 올렸다. 한 숨에 로잔을 지나고, 제네바를 지났다. 제네바 지나치면서 고속도로 옆으로 ’뫼벤픽호텔‘이 보였다. 언젠가 출장 중에 한 번 묵었던 호텔이었다. 내가 출장 중 묵었던 호텔 중에서 가장 비쌌던 호텔, 가장 좋았던 호텔이었다. 이번 여행 중에도 한 번 묵었으면 했던 호텔이었는데 차마 돈이 아까워서 그러지 못했다. 하룻밤에 거의 70만원 정도였다.
회사 돈으로 출장 핑계대서 해외여행 다닐 때가 좋았다.
내 열심히 일해 돈 많이 벌어서 언젠가는 한 번 저기서 잔다!
이런 내 마음을 내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 프랑스. A40번 고속도로를 타니 얼마 안가서 톨게이트가 나왔다. 생각해 보니 아직까지 고속도로를 돈 내고 타지를 않았다. 프랑스 고속도로는 돈 내는 시스템이 어찌 되는고....
우리나라랑 똑같았다. 고속도로 들어갈 때 표 끊고, 나올 때 돈 내는 방식과 가다가 중간 중간에 돈 내는 방식, 두 가지 우리나라랑 똑같았다.
A40번 고속도로 파리가 524km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참 낯설은 숫자. 우리나라 이정표에는 524km라는 숫자가 없다. 사진을 찍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지나니까 파리 507km 표지판이 나온다.
11시 35분. 휴게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46리터. 40.04유로. 정확하게 40유로에서 끊는다는게 조금 오바했다. 4센트. 이거 어렵다. 한국 주유소에서 일하시는 분 존경스럽다. 킬로수는 6천을 넘겼다. 6095km.
12시 30분 또 다시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해먹었다. 나른했다. 스위스 산악지대에 비해 따뜻했다.
메콘(Macon)이라는 동네에서 A6번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이제 본격적인 북향이다.
3시 03분. 파리 195km남음. 이 고속도로를 타고 거의 파리 시내까지 갔다가 A10번, A11번 고속도로타고 서쪽으로 다시 국도와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갈 길이 멀었다. 벌써 3시가 넘었는데...
마음이 급했다. 프랑스 고속도로는 제한 속도가 시속 130km이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이를 지켰다. 그러나 프랑스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속도 위반 하는 사람이 없겠으며 그러면 그 사람 단속하는 카메라 없을까? 카메라 무서워서 속도도 못내고..... 그러다가 든 생각, 과속하는 차만 쫓아가자.
‘이 동네 사람이라면 어디에 카메라가 있는지 알겠지. 앞 차가 속도를 줄이면 나도 줄이고, 그러면 별 문제없겠지.’
마침 밴츠 S시리즈 한 대가 내 차를 가볍게 추월해서 나갔다. 따라갔다. 시속 170km로 달린다. 앞차가 1차로로 들어가 앞서 가던 차를 추월하면 똑같이 추월하고 2차선으로 들어가면 같이 따라 들어가고 완전히 찐드기 작전!
그러다가 따라가던 차가 휴게소로 들어간다. 마침 잘됐다 싶어 따라 들어갔다.
앞 차가 주차를 한다. 나도 주차를 한다. 앞 차에서 운전자가 내린다.
어쩜, 운전자가 내 판단으로는 거의 80대 노인네였다. 대단하다.
어쨌든 덕분에 잘 왔다. 4시 정각 파리 50km남은 지점에 톨게이트가 있다. 3시 03분에 195km. 4시 정각에 파리 50km 남았으니까 57분 동안 145km를 왔다.
그런데 고속도로 요금 장난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우리가 주행한 고속도로가 500km가 채 안됐는데 35.1유로. 유로 당 1400원으로 계산하니 49,140원! 우와 서울서 부산까지 440km 얼마인가? 대충 17,000원으로 기억되는데...
4시 30분. 벌서 해가 지려하고 있고 우리는 파리 근교에 다다랐다. A10번 고속도로로 갈아 타는데 좀 복잡했다. 지도 상에는 고속도로에서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 중간에 N104번 국도가 끼어있었다. 이제 서쪽으로!
4시 45분에 A10번 고속도로로 들어갔다가 4시 57분에 A11번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또 다시 주유. 하루에 두 번 기름 넣었다. 이번엔 42리터 37유로. 6692km. 6095km에서 46리터 넣었는데 이번엔 한 번 주유로 597km밖에 못왔다. 아까 A6번 고속도로에서 시속 170km로 달린 것이 연비가 줄어든 이유같다. 경제속도를 지켜야겠다.
6시 25분 자동차 경기, '르망 24시'로 유명한 르망을 지났다. 우리에겐 자동차 이름으로 더 친숙한 도시. 언젠가는 꼭 '르망24'시를 정말로 24시간 동안 봐야지.....
르망에서 고속도로를 A81번으로 갈아 타고 나니 자연스럽게 N157번 국도로 바뀌었다, 계속가면 렌즈(Renns).
6시 45분. 사방은 이미 깜깜해졌다. 오늘 운전한 지 12시간. 5842km에서 시작하여 현재 6802km. 960km주행. 기름 두 번 넣었고, 밥 한 번 해먹었고, 맥도널드 들어가서 햄버거 먹었고, 전부 다 합쳐서 3시간이라고 치면 9시간 동안 960km를 운전했다. 평균시속 106km. 역시 스위스 빠져 나올 때 산 길 타면서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A81번 종점은 렌즈. 우리는 그 전에 비트레(Vitre)로 빠졌다. 다시 A84번 고속도로를 타려면 이게 지름길이었다. 빠지자 마자 고속도로 진입 이정표가 나왔다. 도로 번호고 뭐고 그 이정표만 죽어라 쫓아갔다. 독일 시골길을 달리다가 다시 프랑스 시골길을 달려보니 독일보다 프랑스가 좀 못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만 못사는 것인지는 몰라도.
거리엔 사람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고 불 켜진 창도 별로 없었다. 음산한 분위기.
7시 39분. 다시 A84번 고속도로를 타니 드디어 이정표에 ‘몽셍미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프랑스가 땅이 넓어서 그런지 운전이 장난이 아니다. 지도 상에서는 잠깐이면 갈 것 같은 거리도 장장 67km. 서울서 평택 정도였다.
8시 19분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다시 국도. 여기서부터는 계속 ‘몽셍미쉘’ 표지판만 따라가면 되었다. 그런데 뭔 시골 길에 그리 로터리가 많은지 로터리 천국이다.
8시 40분. 드디어! 드디어! 몽셍미쉘에 도착했다. 누적 킬로수 6963km. 14시간만에 1121km를 달려 유럽 대륙을 대각선으로 종주했다!
인터라켄에서 출발할 때의 예상. 거리 800km. 주행시간 8시간, 이 얼마나 허황된 예상인가...
바다 위에 떠있는듯한 몽셍미쉘의 야경. 몽환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꿈 속의 환상!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실제로 다리는 후들후들 거리고, 피곤에 지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몽생미셀’ ‘성 미카엘의 산’이라는 뜻의 수도원이다. 바닷가 바위섬에 지어졌는데 무엇이 자연의 바위이고 어디부터가 사람이 만든 건물인지 구분이 안가는 절묘한 건축물이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조명이 너무 어두웠다는 것! 조금만 더 밝았으면 좋았을텐데.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오기로 하고 몽셍미셀 근처의 숙박촌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나오는 호텔. 포뮬 베르테(Formule Verte) 둘이 39유로. 간판에 그림으로 써놓았다.
밤 9시 30분 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니,,,, 정말로 시골 여인숙같은 분위기....
길 건너 로티세리라는 레스토랑에서 늦은 시간이라 메뉴 고를 자유도 박탈당한 채, 주는 음식을 먹었다. 연어 요리였다. 그런데 엄청난 고생을 한 뒤라서 그런지 이번 여행 중에 먹어 본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11시.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한결 풀렸다. 시설이나 침대 커버 색깔이나 모두 우중충하기는 했지만 따뜻한 물은 잘 나왔다.
이제 여행 마지막 밤. '벌써?'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을 남긴 채 또 밤은 지나가고 있었다.
( 8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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