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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時雨 40회: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연재] 나는 그대안의 당신이요, 그대는 내안의 또다른 나입니다.
 
백종훈 원불교 뉴욕교당 교무   기사입력  2017/12/03 [15:44]

고시원 총무 생활은 단조로웠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일하는 삼십 초반의 젊은 사장은 한 달에 한 번이나 다녀갔고, 그의 어머니가 가끔 들려 고시원을 살피고선 아들 자랑을 한껏 하다 갔다. 재수생, 가출한 여자아이, 대학원생, 감정평가사 준비하던 형들, 싼 방을 찾아 하루 묵어가는 이, 그리고 악취로 집에서 쫓겨난 한 남자가 기억에 남는다. 한 평이 조금 넘을까한 사무실은 가끔 오는 문의전화 말고는 적막했다.

 

▲  영화 물속의 오월   © 군포시민신문

 

전화 램프가 반짝인다. 동아리 ‘영화 중독 집회’를 이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한 C형이다. 계단 쪽으로 나가 폴더를 열었다. 미쟝센 단편영화제 출품작을 준비 중인데 같이 해 보자고 한다. 끼도 없는 내게 이런 날이 있을 줄이야...그것도 무려 주연이라니! 어쩐 일이냐는 질문에, ‘넌 중간에 도망갈 것 같지 않아서.’랬다. 하긴 들어갈 시간도 시간이겠지만 출연료를 바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외대 통역대학원 다니는 여동생이 영어자막도 해 줄 테니, 잘 만들어서 해외로도 나가고 레드카펫도 밟아보잔다. 그 말에 솔깃해 덜컥 수락하고 만다.   

 

배우 노익현씨가 나의 룸메이트이자 용역깡패로, 미얀마인 ‘무조’가 이주노동자로, 나는 운동권 학생 역을 맡았다. 촬영은 군포와 서울을 오가며 진행됐다.

 

자취방에서 한 방 쓰는 익현의 생일을 맞이하여 정성껏 요리해 상을 차리고, 김성재의 ‘너의 생일’을 불러주는 씬을 찍을 때였다. 여기서 곤혹스러웠던 건, 동성애관계라는 얄궂은 설정 때문이었다. 단편이다 보니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주고받는 눈빛과 음성만 가지고 둘이 연인임을 암시해야 했다. 그러나 남자 몸으로 남자를 사랑 하는 존재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인가 상대를 애틋하게 응시하는 컷이 영 어정쩡하다. 감독이 어색하지 않게 어련히 잘 편집하리라 믿으며 그렇게, 그렇게 몇 장면 더해서 영화는 영화대로 조용히 마쳤다. 수상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필름도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실제 동성애자와 한 기숙사에서 동고동락하기로는 한국계 미국인 W가 있었다. 출가도반인 그가 대중목욕탕에서 얼굴이 벌게져 어쩔 줄 몰라 하는 까닭을 좀체 모르다가, 커밍아웃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언제나 밝고 누구에게나 선량한 그가 중대한 계문을 어긴 것도 아니고, 단지 성적 지향을 고백했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는데도, 그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거칠게 돌변했다. 몇몇 어른들의 몰이해로 몹시 힘들어하던 그는, 결국 깊은 상처를 안고 익산을 떠났다. 더욱이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는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었다.

 

동성혼이 합법화된 미국에 살며 레즈비언이나 게이를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되었어도,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하지만 ‘낯설다’, ‘다르다’는 이유로 ‘이상하다’, ‘비정상이다’로 규정짓거나, 더 나아가 죄의 굴레를 씌울 수는 없다. 그들의 내밀한 잠자리는 애초에 나의 관심사도 아니다.

 

모두가 부처될 수 있는 차별 없이 소중한 생명이며, 오직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사이에 차별이 있어, 때에 따라 서로 스승과 제자가 되어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자고 부처님께서 간곡하게 말씀하셨기에 나는 그들을 미워할 수 없다. 오랜 혐오와 멸시, 배척에도 불구하고 애플, 캘빈클라인, 구찌, 톰포드, 샤넬, 루이비통, 조르지오 아르마니, 돌체&가바나 등의 이름으로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온 이웃이 바로 그들이다. 

 

누군가를 가슴 깊이 사랑해본 사람은 안다. 사랑은 어쩔 수밖에 없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 마음과 마음을 나는 존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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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03 [15:44]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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