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남부의 재건과 서부로의 팽창이 시대적 과제였고 때마침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금광의 발견 등이 골드러시를 이루어 이미 발전하고 있던 동부와 미개척지 서부를 연결하는 철도사업이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굉장히 큰 이권사업이 되어 있었다.
이 시기 미국의 정계는 1865.4. 링컨이 암살된 후 그 뒤를 앤드류 존슨(Andrew Johnson)부통령이 승계하여, 남북전쟁 이후 북부의 공화당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남부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느라 미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소추를 당하면서 힘겹게 대통령 직을 수행하고서 물러난 후 1868년의 대선에서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전쟁 영웅인 율리시즈 그랜트(Ulysses Grant)장군이 승리하여 미국의 18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위대한 군인도 정치에는 어린애일수 있다’는 평과 ‘미국 정치사상 가장 부패한 시기였다’는 평을 들으면서도 재선에 성공한 운 좋은 사람이었지만 미국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는 시기를 만들었다.
이 시기는 수완 좋은 사업가들이 정치인들을 데리고 놀았던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은 건국 이래 전쟁이 났을 경우에만 징병제를 예외적으로 채택하고 평시엔 모병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남북전쟁 당시엔 징병제를 채택하면서도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자기 대신 군에 입대할 사람을 사서 입대시키면 자신은 군 입대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채택했다.
그 제도의 대표적인 수혜자가 J.P.모건, J.D.록펠러, 제이 굴드(Jay Gould),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등이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19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성공한 사업가들이 되지만 이들이 대리로 남북전쟁에 내보낸 사람들은 모두 전쟁에서 죽었다고 한다.
1872년에 크레디트 모빌 회사부정이 드러남으로써 그랜트 대통령 시대의 만연한 부패의 일단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메사추세츠주 출신 하원의원인 오크스 에임스(Oakes Ames)는 네브래스카주에서 서쪽으로 나가는 철도를 경영하는 유니언퍼시픽 철도회사의 이사였다. 에임스 의원은 유니언퍼시픽회사와 함께 크레디트 모빌이라는 철도 건설회사를 설립하여 유니언퍼시픽의 모든 철도공사의 도급계약을 독점했다. 그 회사는 4,400만 달러의 공사를 하고서는 공사비 부풀리기를 하여 9,400만 달러의 돈을 의회로부터 지급받았다 한다. 에임스는 이 흥정을 매끄럽게 추진하기 위해 크레디크 모빌사 주식을 엄청나게 수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홍보하면서 다량으로 정치권에 뿌렸는데 그것을 취득한 인사 중엔 그랜트 대통령시기에 부통령으로 있던 쉴러 콜팩스(Schuyler Colfax)도 포함되어 있어서 <副>자 붙은 자리가 전혀 새로운 의미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는 평을 받으면서 미국 정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그랜트 대통령은 그 당시 콜팩스 부통령에게 그가 그 사건과 무관하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위로의 서신을 보냈다고 한다.
릴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가 소유한 센트럴 퍼시픽 철도회사도 캘리포니아에서 동쪽으로 가는 철도를 부설하면서 같은 방법으로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땅을 얻고, 철도공사의 도급계약을 따내고 거액의 공사비 과당지급을 받았다.
코넬리어스 밴더빌트도 처음엔 선박운송업으로 돈을 벌었지만 나중엔 철도사업에 뛰어들어 거대한 부를 일군 사람인데 부정과 뇌물을 통하여 뉴욕센트럴 철도회사를 미국 최대의 철도회사로 키워 그 막대한 재산을 가족에게 물려주었는데 그 재산을 물려받은 가족들은 사치스런 파티로 나날을 보내면서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 말아 피우기,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의 음식물에 보석을 묻어놓고 그것을 찾아내는 게임을 벌이는 등 돈 많이 번 사람들의 사치생활의 표본을 과시한 바 있다.
위와 같은 그랜트 대통령 당시의 부정부패에 대하여 크게 사회문제가 되자 당시 미국 연방의회와 정부는 이들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이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대신에 이렇다 할 대학이 없고 낙후된 남부와 서부에 대학을 설립할 것을 요구하여 릴랜드 스탠포드는 샌프란시스코에 스탠포드대학을 세웠고 밴더빌트는 테네시주의 내슈빌에 밴더빌트 대학을 세웠다(물론 이들 대학은 이러한 사실은 대학 역사에 전혀 언급하지 않고 설립자의 고상한 창학 이념만을 선전하고 있다). 에임스는 자신이 연방의원이라는 위상이 있어서 버텼는지 대학을 세우지 않고 지나갔다고 한다.
어쨌든 부를 가진 사람들의 부를 그렇게 활용하는 것이 이들의 부정을 처벌하는 것보다 당시 미국의 국익엔 더 부합한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로마사에서는 약관 31세의 나이인 BC202년에 자마전투에서 한니발을 격파함으로써 제2차 포에니전쟁을 로마의 승리로 이끌어 로마를 위기에서 건져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 대하여 그 후에 로마사회는 그의 전쟁 전리품횡령이라는 사소한 부정을 이유로 탄핵함으로써 스키피오는 그 분을 이겨내지 못하여 이른 나이에 사망하면서 죽을 때 “배은망덕한 조국이여!”라는 저주를 하며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어 대비가 된다.
무엇이 정의인가, 무엇이 정의 관념에 부합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이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요즘이고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또한 하게 하는 요즘이다. <외부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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