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칼럼] 탈원전과 전문가들의 '혹세무민'

미디어와 정치(1)

김동민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 | 기사입력 2017/07/13 [13:03]

[김동민 칼럼] 탈원전과 전문가들의 '혹세무민'

미디어와 정치(1)

김동민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 | 입력 : 2017/07/13 [13:03]

  

▲   김동민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   

정부의 탈원전정책 추진에 대해 60개 대학 공과대학 교수 417명이 7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대 성명을 냈다. 성명서는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명의로 <전문가 의견수렴과 합리적인 공론화 과정을 통해 장기 전력 계획을 수립하라> 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정부가 전문가의 의견을 묻지 않고 무책임하게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그럴까?

 

이 낯선 풍경을 이해하기 위한 키 포인트는 전문가라는 직()이다. 19세기 산업사회 이후 지금까지는 전문가가 대접받는 시대였다. 그러나 21세기는 융합형 지식인을 요구한다. 전문가란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 무릇 자연과학자는 인문학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하며, 인문사회과학자는 자연과학의 지식을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지식의 융합이다.

 

성명에 참여한 교수들이 주로 소속된 전문분야인 원자핵공학이나 양자공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보어 · 하이젠베르크 · 슈뢰딩거 등의 양자역학이 있음으로 해서 생겨난 분야다. 이 과학자들은 역사의 현실에 고뇌했으며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슈뢰딩거는 물리학 공부를 하는 철학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반핵운동에도 동참했다.

 

교수들은 대개 박사(博士). 한자의 뜻으로 볼 때 박사란 넓게 공부한 선비다. 학문이라는 말도 본래 넓게 공부하고(博學) 깊이 있게 질문한다(審問)는 의미(). 글을 배운다(學文)는 말이 아니라 배우고 의심하고 진리를 깨우칠 때까지 스스로 질문한다(學問)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은 좁고 깊게 공부해놓고 박사,전문가라고 한다. 그리고 학문이라고 한다. 플라톤의 비유를 들자면, 동굴 안에서 앞에 비치는 그림자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경박(輕薄)하다.

 

전문가, 4대강 사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자들도 전문가들이었다. 경제전문가들의 예측은 죄다 틀린다. 종편을 호령하는 정치평론가들의 진단은 무당 수준이다. 기자들이 독자들을 가르치려 들고 호통치는 것도 자신들이 전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총리 시절에 원전을 신뢰하며 옹호하다가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반대운동을 하는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는 전문가에게 속았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원전이 값싼 전기를 제공한다는 전문가의 말은 거짓말이다.

 

지금 전문가집단은 패러다임 전환기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중이다. 부패와도 가깝다. 지성사에서 지식인이란 원래 순수하고 융합적이었다. 21세기의 시대정신은 지식의 융합이다. 시민들이 융합형 지식으로 무장할 때,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혹세무민 하는 자들이 사라질 것이다. 전문가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융합형 전문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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