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발견했다는 아메리카에는 잉카-마야문명을 자랑하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범선을 타고 대양을 건너 온 정복자들은 총칼로 그들을 무참하게 살육했다. 정복자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 있었다. 그들한테 묻어온 전염병이었다. 유럽인에게는 면역력이 생긴 질병도 인디언에게는 낫선 괴질이었다. 면역결핍은 인디언들을 거의 멸종상태로 몰고 갔다. 인류가 백신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온갖 역병이 인간의 씨를 말릴 만큼 위세를 부렸다. 흑사병, 발진티푸스, 황열, 스페인 독감 등등이 말이다. 하지만 인류는 역병의 정체는 모르나 격리를 통해 전염을 막아내는 지혜를 발휘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200km 떨어진 곳에 체스키 코롬로프라는 소도시가 있다. 볼타바 강이 이 작은 도시를 감싸고 S자형을 그리며 흐른다. 붉은 지붕들과 둥근 탑들이 어우러져 유럽의 중세 도시가 긴 세월 박제되었다 되살아난 듯하다. 동화 속에서나 나옴직한 이 도시는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스보르노스키 광장에는 흑사병 종식을 기려 1723년 세운 기념탑이 있다.
동쪽에서 무역로를 따라 왔다는 흑사병이 14세기 유럽에서 5년간이나 맹위를 떨치더니 인구의 1/3이나 되는 2,500만명이 죽었다. 그런데 그 괴질이 이 작은 도시를 피해갔다. 사람들은 이 기적을 두고 신이 영주에 게 내린 은총이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돌림병을 막아낸 것은 ‘격리’다. 지형적으로 강이 도시를 감싸고 흘러 흑사병의 매개체로 알려진 쥐가 건너기 힘들었다. 환경적으로도 이 도시는 주로 무역에 종사했기에 밭농사를 거의 짓지 않아 설치류가 서식하기 어려웠다.
유럽을 무덤의 대륙으로 만든 죽음의 악귀는 이탈리아의 항구도시를 통해 들어왔다. 1347년 흑사병이 상륙하자 베니스가 기절했다. 부랴부랴 감염된 항구에서 오는 선박들을 40일간 격리했다. 오늘날의 두브로프니크는 1377년부터 선박과 함께 승객-선원들을 섬에다 가두었다. 베니스도 뒤따라 산타 마리아 디 나자레트라는 섬을 종합격리수용소로 운영했다.
1845년부터 5년간이나 이어지는 긴 장마로 아일랜드에는 주식인 감자가 잎마름병에 걸려 대흉년이 들었다. 감자기근 탓에 인구 800만명중에서 200만명이 아사했고 200만명은 이민 길에 나섰다. 말이 이민선이지 주검을 싣고 가는 운구선이나 다름없었다. 많은 이가 굶어 죽거나 티푸스로 죽어 신천지를 밟지 못했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 된 도서격리수용소는 패트리치라는 섬이다. 이 곳은 1847년에만도 이민자 10만명중에 1만5,000명을 수용했다.
20세기 최악의 역병은 1918년 발병한 스페인 독감이다. 제1차 세계대전 사망자가 1,500만명인데 독감 사망자는 5,000만명이 넘었다. 일제치하의 한반도에서도 740만명이 감염되어 14만이 희생됐다. 그런데 미국령 사모아에는 이 역병이 발을 들려놓지 못했다. 총독 마틴 포이어가 섬을 격리해 외부의 접근을 차단했다. 모든 선박의 접안을 5일간 금지시켜 승객-선원의 하선을 불허했다. 그 덕택에 사모아는 지구상에서 스페인 독감에 걸리지 않는 손꼽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이와 달리 이웃 서사모아는 5명 꼴로 1명이 죽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03년 사스가 삽시간에 중국을 휩쓸고 홍콩, 베트남, 캐나다로 번져 금새 한반도에도 급습할 태세였다. 노무현 정권이 신속하고 철저하게 대처해 한 명의 목숨도 잃지 않았다. 사스환자가 공로로 입국할 사태에 대비해 인천공항 부근의 교육연수원을 승객격리시설로 지정해 놓고 있었다. 작년 10월 미국에 에볼라가 나타나서 발칵 뒤집혔지만 신속한 대처로 한 명밖에 사망하지 않았다. 환자의 입국-이동경로와 접촉범위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즉각 공개했다. 그 환자가 일주일간 머물렀던 아파트 주위를 봉쇄하고 그가 접촉한 주민-의료진을 격리해 감시했다.
미국이 에볼라 차단에는 성공했지만 오바마의 지지율은 곤두발질쳤다. 그가 서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의료진을 강제로 격리한 주정부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직접 나서 위기관리의 지휘봉을 잡지 않고 그것을 비전문가에게 맡겨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독일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경우가 발생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중동에 다녀온 60대 남성이 메르스로 죽었지만 그 후 감염자가 없어 독일 방역체제의 우수성을 말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메르스가 온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전염병 차단의 가장 기초적인 격리마저 무시하고 정보공개를 거부해 생사람들이 죽어나는 판이다. 서울삼성병원은 명성과는 딴 판으로 메르스의 진원지 노릇을 하고 있다. 메르스가 박근혜 정권의 무능-무지-무식-무위를 여지없이 드러냈지만 별일이 아니라는 얼굴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군포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