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국 역사여행(2)[기획 연재] 상해 홍구공원에서 만나는 역사의 여러 얼굴들편집자 주 - 한국 관광단이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 가면 반드시 보는 윤봉길의사의 의거비와 함께 새롭게 만나는 일본과 중국의 태도에 대한 경기대 사학과 이재범교수(문화재 위원)의 기고문.
흔히 역사는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얼굴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해의 홍구공원(虹口公園, 지금의 노신공원)에서 있었던 윤봉길 의사의 일본군 대장 시로카와 폭탄투척사건도 그 하나일 것이다.
홍구공원에서 일어난 일
한국 ․ 중국 ․ 일본의 이상한 인연
그런데 주변을 유심히 살피면, 바로 그 주변에 일본에서 세운 앵원(櫻苑, 사쿠라동산)을 만나게 된다. 그 곳 앵원에는 ‘세계평화를 위해서’라는 문구가 쓰여진 비목이 있다.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했던 선조들을 추억하는 곳이다.
그런데 중국은 왜 자신들을 침략한 일본에게 기념장소를 만들도록 관용을 베풀었던 것일까? 그러나 중국의 태도는 다시 생각해 보면 일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수단 이상은 아닌 것이다. 윤봉길의사 기념관 매정의 입장 수입은 중국의 것이다. 이를 보면 중국의 처사는 관용이 아니라 지극히 경제적 이유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폭탄이 터진 후) 회오리바람이 소용돌이치는 군중들 사이에 조선 사람 윤봉길이 있었다. 그는 군경들에 의해 구타당해 쓰러졌다. 주먹, 군화, 몽둥이가 그의 몸을 난타했다. 만일 한 사람이 죽게 된다면 바로 그 조선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곧 그 회색 양복은 갈기갈기 찢겨져 땅에 떨어졌다. 잠시 후 그 한국인은 땅바닥에 쓰러졌는데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그의 몸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총검을 가진 군경들이 그가 쓰러져 있는 곳에 비상 경계선을 치고 군중들로부터 그를 차단했다. 군경들이 비상 경계선 안에서 그를 감시하였다. 곧 차 한 대가 나타났다. 그 조선인은 (일본군에 의해) 머리와 다리가 들려 짐짝처럼 통째로 차 뒷좌석에 구겨 넣어졌다. 그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상하이타임스, 4월30일>
폭탄 투척자(윤봉길)의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은 분노하였다. 그들은 그를 붙잡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으며 주먹으로 몰매를 때리고 그의 옷을 찢어 내었다…그는 머리에서 허리께까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노스 차이나 해럴드 5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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