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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에 팥죽을 쑤어 집안에 뿌리거나, 전통 집을 지을 때 붉은 흙[赤土]을 뿌리는 까닭은 그 색깔이 잡귀를 몰아내기 때문이다. 선사 무덤에서 붉은 흙이 나오는 까닭도 영원한 평안을 비는 마음이다.
한 웅큼 정도가 아니라 붉은 흙에 들러싸여 사는 마을이라면 얼마나 마음 든든할까. 우리 조상들은 그러한 터[立地]를 내세운다. ‘불근고개[홍현]1’는 강화군 교동면 봉소리 밑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는 같은 이름으로 두 번째 ‘불근고개[홍현]2’가 있는데 작은막 동쪽에 있는 고개다. 당연히 “땅빛이 붉음”이라고 지명유래에 적혀 있다.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에도 ‘붉은고개[紅峴]’가 있다. 강원도 원주시에는 ’붉은/불근덕고개가 넷이나 있다(호저면 대덕리 德谷, 태장동, 가현동, 법천리=紅峴). ‘덕’은 언덕이니 ‘덕고개’는 겹말이다.
‘불근거리[부근동]는 경기도 김포시 계양면 갈산리 칙미 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흙이 붉음‘이 지명유래의 전부다. 경기도 부천시 계양구에 부근동(富根洞)이 있으며, 강화군 하점면에도 부근리(富近里)가 있는데 지명유래에 대해 써놓은 것은 없지만 같은 계통으로 보인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새터 동쪽에 있는 마을 이름은 ’불근댕이‘다. 강원도 영월군 북면 ’불근덕이‘는 열녀ㆍ효자비가 있어서인지 한자지명은 공기리(恭基里)다. 폐교된 공기초등학교를 지나 공기2리 마을 입구에 있다. 넓은 들녘 위 툭 튀어나온 언덕(둔덕) 위를 말한다. 여기서 ’불근‘은 불뚝 튀어나온 땅 모양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따금 엉뚱한 유래가 보이기도 한다. 경북 울진군 서면 쌍전리 불근동(佛近洞)은 대웃재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예전에 이 마을에 절이 가까이있었다 해서 부락명을 불근이라 함”(지명조사표, 1959). 한자로 잘못 작명하고, 그 한자대로 지명유래를 써놓았다. 『조선지지자료』(1910년대) 충청남도 편을 보면 남포군 古邑面에는 ‘불근당니(리)’ 마을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군 웅천면 수부리에도 ‘불근댕이[부근당, 부당]’마을이 있다. 유래는 “수부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전에 마을 연못이 있고, 그 옆에 부군당이 있었음”이다. 당집이 있으므로 ’00댕이‘가 되었다. 원주시 호저면 주산리의 붉은덕고개는 ‘북덕재’라고도 한다. 붉은 황토흙 고개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산지당’이라 부르는 山祭堂이 있는데 ‘천제당’이라고도 한다. 애초에, 부르던 대로 이름 지으면 ‘붉은/불근당’이 될 터인데 그 신주가 어느 神인가 하는 분별심에서 이런저런 한자 이름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것이 불(근)당의 자연발생 이력이다. 붉거나 튀어나온 언덕/터 자체가 신령이 깃든 곳으로서 위함[信奉]을 받는다. 이 ‘불(근)’을 ‘ᄇᆞᆰ’ㆍ‘불함(不咸)ㆍ밝음’이라 하든(최남선) 불ㆍ불알ㆍ힘(김태곤)이라 하든, 어느 하나만으로도 그 신력(神力)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통한다. 그런데 맨땅[露天] 기도/예배터는 비바람에 취약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붉음ㆍ불(알) 자체나 그 상징 또는 언표(言表. 神主)를 모시고 집을 지어 附根堂ㆍ付根堂ㆍ府君堂 식으로 이름을 붙였다.
관변식(官邊式) 칭호 ‘府君堂(부군당)’을 쓰는 지역이 일정한 곳에 무리를 이룬 곳도 있다. 벼슬 이름 ‘부군(漢나라 태수)’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서울 한강 유역에서 흔히 보인다. 조선 시대 경아전(京衙前)이나 지방 관아 이웃에 설치된 제당이다. 자신의 마을을 떠난 구실아치[中人]들에게도 기도처는 요긴하다.
강화군 교동 읍성 부근당은 연산군을 모시는 신당인데, 남근(男根)을 달아놓았으나 2016년에 주민이 불태워서 시방은 빈자리다. 역사상 아무개라는 서사(敍事)만 빼면 일반 당집 그대로다. 이 부근당에는 현재, ‘미나리를 바친다’는 뜻의 ‘扶芹堂(부근당)’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2008년까지도 현판이 없었는데, 2009년 들어 어떤 분이 임의로 현판을 그렇게 쓰서 달았다고 한다(장장식).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7가 205-2에 있는 상산부군당은 상산전(上山殿)이라 불리며, 간판도 그렇게 되어있다. ‘부군’보다는 ‘상산’을 내세워 최고 산신인 ‘상산대감’을 모신다. 이렇게 품위 있는 한자 현판을 갖추고 있으나 ‘당집을 새로 세울 때 흙말[土製馬]이 나와서 상산전 안에 안치하였다’(『영등포구지』437쪽)고 하는 것을 보면 당집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부근당과 붉은/불근당의 같고 다름이나 앞뒤[先後] 문제가 남아 있다. 이 문제는 서낭-성황 문제와 흡사하여 시사(示唆)를 받는다. 국어사전에는 ‘서낭당(--堂)’의 원래 말이 성황당(城隍堂)이라고 하여 성황당>서낭당으로 변화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음 소견을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성황 문제는 서낭을 한자로 표기할 때 중국의 성황을 차용한 것으로 보여 성황은 식자층에 의한 한자 표기에 더 큰 비중이 있고, 재래의 서낭신앙 내용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김명자) 우리 문자 한글이 없던 시절, 있어도 한사코 안 쓰던 시절을 잊어버리면 판단을 그르칠 소지가 많다. 사실 ‘서낭’이 ‘성황’에서 유래되었다면, 배[船上]에서 하는 고사나 기도처를 ‘배서낭’이라 하는데 이것은 성채[城]나 해자[隍]와 아무 관련도 없다.
두 가지 의견을 덧붙인다. 그 하나. 강화도 교동의 부근당은 남성신(연산군)을 모시고, 남성을 상징하는 남근을 주저리주저리 달아놓았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어느 독지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무남근이라도 봉헌하여 달아놓고 싶다 했다. 그 남근은 자신이 해랑당을 답사할 때 관계자가 기념으로 선물한 것이니 이치와 사연이 맞춤하다. 더하여 남근깎기도 하는 지자체가 가상하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석불도 아닌데 곧바로 다시 모시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가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선조들이 모셨고, 지금도 마을과 이웃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한 나무남근을 불태우는 폭력이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되겠다.
그 둘. 삼척시 원덕읍 섶내미 마을 해랑당에서는 치마저고리를 곱게 입은 여신의 화상을 모신다. 바다에 떠도는 처녀귀신을 잘 달래야 풍랑도 멈추고,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그래서 여신이 좋아하는 남근을 깎아 바친다. 이런 배경 설화 때문인지 바다는 성별로 보아 여성이라고 한다. 이치로 보면 그렇다. 그런데 한반도를 횡[橫. 東西]으로 지나 서해안 강화도에 이르면 남성신 부근당에 남근이 걸린다. 남녀음양 이론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더욱 공부할 거리가 많아진다.
참고문헌 : 김은철,『원주지명총람』, 김태우, 「서울 한강 유역 부군당 의례 연구」, 정연학, 「강화 교동도 ‘교동읍성’ 내 부근당의 성격과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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