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노인의 중국 시안(西安) 여행기 4일차

방문지_의덕태자릉, 건릉, 법문사

신완섭 기자 | 기사입력 2025/11/13 [08:21]

세 노인의 중국 시안(西安) 여행기 4일차

방문지_의덕태자릉, 건릉, 법문사

신완섭 기자 | 입력 : 2025/11/13 [08:21]

  10월 12일(일)부터 10월 18일(토)까지 6박 7일간 다녀온 세 노인의 중국 여행기를 소개한다. 60대 중반을 갓 넘긴 나와 달리 동네 형들 두 분은 우리 나이로 올해 73세, 71세로 나를 포함하니 세 사람의 평균나이가 70.3세가 나온다. 별수 없이 나도 노인 대열에 끼인 채 여행에 합류했다. 4일차 여행을 글로 남겨본다.

 

  2025/10/15(목) 흐린 뒤 갬

  (방문지_의덕태자릉, 건릉, 법문사) 

 

  현지여행사 패키지투어

  새벽 6시경에 눈을 떴다. 오늘은 일정 중 유일하게 현지여행사를 통해 단체관광에 합세하기로 했다. 오전 7시에 서원문 입구로 관광버스가 오기로 하여 7시 10분 전부터 나가 있었으나 15분가량 연착한다는 연락을 받고서도 5분이 더 지나서야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서안 시내를 벗어날 때까지 대여섯 군데에서 더 정차했으므로 버스는 빈자리 없이 꽉 채워졌다. 그러나 한국인 관광객은 우리 일행뿐이었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서안 외곽 서북 지역의 섬서성 건현 의덕태자 묘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10시가 다 되었다. 

    

▲ 의덕태자묘박물관 입구 (사진=신완섭)  © 군포시민신문

 

  섬서성 건현 의덕태자(懿德太子)묘

  이곳은 당 건릉 17개 능원 중 하나인 지하벽화묘로 1971년에 발굴되었다. 묘주는 당 중종(中宗)의 장자 이중윤(李重潤, 682~701)이다. 대족 원년(701)에 누이 영태공주 이선혜(永泰公主 李仙蕙)와 함께 할머니 측천무후로부터 죽임을 당해 무후 사망 후인 신룡 2년(706)에 건릉에 배장되었다. 묘의 길이는 100.8m이고 지름 55m, 높이 18m로 전방 입구 앞에 토궐(土闕), 석인(石人), 석수(石獸), 화표(華表)가 배치되어 있다. 묘 내부는 천정 7개의 묘도(墓道) 안에 벽돌로 쌓아 올린 용도(甬道)와 전후에 2실의 묘실이 있다. 후실 서쪽에 있는 가형석곽(家形石槨)의 옆면에는 인물의 선각(線刻)이 새겨져 있다. 묘도 좌우벽에는 의장대, 궐루, 산악, 4신의 청룡·백호가, 용도에서 묘실 사이에는 남녀 시자(侍者)와 연주자가, 천정 부위에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이 그려져 있다. 행적을 기록한 묘지(墓誌)는 없으나 대리석제의 애책(哀冊,애도글)과 1천여 점의 도용(陶俑), 삼채유도(三彩釉陶), 마구(馬具) 등이 출토되었다. 전형적인 당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었으나 지하 벽의 조명이 어두워 벽면에 그려진 그림들을 제대로 감상하지는 못했다.

  

  당 고종과 측천무후 합장릉, 건릉(乾陵)

  중국 건릉은 의덕태자묘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섬서성 함양시 간현(甘縣)에 위치한 당나라 황제 능으로, 당 고종(628~683)과 측천무후(624~705)가 함께 묻힌 합장릉이다. 시안에서 서북쪽으로 85km 떨어진 량산(梁山)에 자리하며, 해발 1,049m의 원추형 산을 능으로 삼았고 면적 2.4평방킬로미터에 석각 성문 4개가 남아 있다. 684년에 건립을 시작해 23년 만에 완공되었고, 이곳 당나라 18능 중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능으로 알려져 있다. 당 고종과 측천무후가 부부로 합장된 유일한 능으로,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이다. 

 

▲ 목없는 61사신석 (사진=신완섭)     ©군포시민신문

 

  주요 볼거리로 건릉 동문을 따라 올라가는 내내 호위무사들이 길 양옆으로 도열해 있고 능 앞에는 3,200개의 검은 옥으로 만든 526개의 계단과 18개의 건조대가 있다. 능 입구에는 61명의 신하 조각상이 양옆으로 나란히 서 있으나 모두 머리가 잘린 모양새다. 우측에는 무측천이 자신을 위해 세운 ‘무자비(無字碑)’가 능을 지키고 있다. 왜 한 자도 새기지 않은 민돌을 세웠을까. 할 말이 아예 없거나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아니면 후대들이 알아서 써 넣어라는 뜻이었을까. 무능했던 고종을 대신해 온갖 권력을 휘두르고 자신이 낳은 자식과 손자·손녀까지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으니 죽는 마당에 모든 죄를 사하고 싶었을까. 권좌 일순간이요 인생 무상이라, 간간이 바람이 온갖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길을 따라 실제 무덤이 묻혀있다는 량산을 향해 한참을 걸었으나 끝까지 가지는 않았다. ‘人生事 如影如幻’(인생은 그림자 같고 허깨비 같다). 발굴도 되지 않은 산 언저리에서 또다시 허망을 느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를 위해 인근 영태공주묘(의덕태자묘와 흡사해 관람 생략) 인근의 건릉박물관 식당가로 갔다. 1인당 330위안의 패키지투어 비용 외에 25위안을 별도로 지불했던 식사는 나름 풍성했다. 배를 불린 뒤 박물관 지하에 있는 VR시청각실과 소박한 전시실을 관람했다. 문제는 원래 일정에 들어 있었던 한 무제 무릉(武陵)은 일방적으로 생략하고 일정에 없던 VR 감상이라니, 입체 안경을 쓰고 한참을 보다가 별스러운 감흥도 없는 영상에 머리가 혼미해져 안경을 벗어버리고 도중에 나와버렸다. 전시설은 조촐했으나 나름 당 18릉과 관련된 전시 유물(주로 당삼재와 그림·벽화)들을 볼 수 있어 현장에서 제대로 보지 못한 내용들을 보충할 수 있었다. 이곳은 시안을 오가는 관광버스(요금 30위안)가 운행되므로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매하여 여러 정류장에서 승하차할 수 있다고 한다. 

   

▲ 법문사 입구 (사진=신완섭)  © 군포시민신문

 

  불법의 문을 연 법문사(法門寺)

  서안에서 서쪽으로 110km 지점에 있는 법문사는 사찰 이름 그대로 불법의 문을 연 곳이다. 건릉에서는 버스로 약 2,30분 더 달려간 곳에 있다. 고찰이겠거니 하고 갔는데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휘황찬란하게 새로 지은 건물이 웅장하다 못해 위압감을 준다. 불자들을 위한 선원으로 꾸민 것이기에 더욱 보기가 거북할 정도다. 규모도 엄청나서 멀리 진신보탑 불지사리가 모셔진 합시사리탑까지 코끼리 차량을 이용해 길 양옆 황금부처상의 호위를 받으며 달려갔다. 직선 광장을 질주하는 느낌이 마치 경주용 로마전차에 올라탄 느낌이다. ‘쿼바디스 도미네’, ‘나무아미타불’... 장탄식이 절로 난다. 탄식을 잠재운 것은 예전의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준 법문사였다.

 

  법문사의 연원은 인도 아쇼카왕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부왕의 신임을 받지 못했던 아쇼카 왕자는 101명의 형제 중 무려 99명을 살해하며 왕좌에 올랐다. 이후 대제국을 세운 그는 살생에 대해 참회하고 불교에 귀의했다. 그때 그가 중국에 보낸 스님이 부처님 진신사리 19과를 지니고 왔으나, 불법을 전할 환경이 안 갖춰진 때라 서안 인근 성총(聖寵)에 묻어둔 채 입적하고 만다. 이후 안식국의 왕자이자 역경가였던 안세고(安世高)가 중국에 들어와 성총에 머물다가 하늘에서 오색광채가 뻗는 자리에서 진신사리를 발견하고는 사리 중 부처님의 손가락 사리를 모신 탑을 세운 곳이 바로 이곳(당시 아육왕사)이다. 이처럼 불교 초창기 때는 대부분의 사찰 건물이 부처님 사리를 모신 탑을 먼저 세운 뒤 이를 관리하기 위해 지어졌다.  

 

▲ 법문사 사리탑 옛모습과 지하궁전 유물 (사진=신완섭)  © 군포시민신문


  2세기 후반 후한 영제(靈帝) 때 아육왕사(阿育王寺)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가 수나라 때 성실사(成實寺)로 개칭, 당나라 초기에서야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당 태종 때 흥성하기 시작했다. 북위에서 당에 이르기까지 황제의 부처님 지골사리(指骨舍利)의 영봉은 9번 이뤄졌으며 7차례나 이곳에서 봉행되었다. 중종은 710년 이곳을 ‘성조무우왕사(聖朝無憂王寺)’로 바꾸도록 조서를 내리고 사리탑을 ‘대성진신사리(大聖眞身寶塔)’라 명명했다. 1568년 진산보탑이 무너졌으나 1579년 8각9층 전탑으로 개축했다. 그 뒤 지반이 함몰되며 완전히 허물어졌으나 1987년 대대적인 보수를 하던 중 지하궁전이 발견되어 그곳에서 지골사리 4과 외에 3천여 점의 백옥으로 정교하게 만든 아육왕탑, 황금 봉(捧)진신보살, 측천무후의 자수치마, 온갖 금관과 은곽, 비취색 자기, 황금 석장(錫杖) 등 문화재가 쏟아져 나왔다, 이것들에 대한 전시관(한 곳은 증설공사로 휴관)이 셋으로 나뉘어져 구경하는 데만 1시간을 지체했다. 이로써 이날의 패키지 투어가 끝났다. 아쉬운 건 원래 일정에 나와 있던 한 무제의 무릉(武陵) 방문이 별 이유 없이 취소되었다는 점이다. 낚였다는 아쉬움을 따로 살펴본 무릉 정보로나마 잠깐 달래본다.

 

  한 무제의 능, 무릉

  항우와 유방의 쟁패 끝에 탄생한 한나라, 한 무제는 55년간 재위하면서 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래서 그를 진시황, 당태종과 함께 중국 고대 제왕 3걸로 칭한다. 한 왕조 황제릉 중 최대 규모인 무릉의 규모는 높이 46.5m, 동서길이 39.5m, 남북길이 40.6m에 달한다. 무릉은 그의 재위 내내 만들어진 수릉(壽陵, 살아생전 조성된 능)이다. 이곳 주변에는 충신들과 비빈, 황실가족 외에도 곽거병, 위청의 묘와 흉노태자 김일제의 무덤도 배장되어 있다. 

 

  오늘날 무릉은 배장된 곽거병 묘로 더 유명하다. 묘 주위에 흉노를 밟고 있는 높이 1.68m, 길이 1.9m의 말 석상인 마답흉노(馬踏匈奴) 석상이 있어서다. 흉노가 말 아래 깔린 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로써 흉노를 정벌한 한나라의 위용을 보여 흉노와 한의 관계 전환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이곳과 무릉박물관은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여행 버킷리스트가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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