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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일)부터 10월 18일(토)까지 6박 7일간 다녀온 세 노인의 중국 여행기를 소개한다. 60대 중반을 갓 넘긴 나와 달리 동네 형들 두 분은 우리 나이로 올해 73세, 71세로 나를 포함하니 세 사람의 평균나이가 70.3세가 나온다. 별수 없이 나도 노인 대열에 끼인 채 여행에 합류했다. 3일차 여행을 글로 남겨본다.
2025/10/14(수) 흐림 뒤 갬 (방문지_진시황 병마용갱, 화청궁, 섬서박물관)
출발에서 병마용갱 도착까지 새벽 6시경에 눈을 떴다. 시안에 온 지 사흘 만에 처음으로 숙소 조식을 먹게 되어 8시가 되기 전에 4층 식당으로 올라가니 아주머니 한 분이 간단식을 내놓는다. 유탸오(油條, 꽈배기) 2개, 삶은 달걀 1개, 생과일 2조각에 뜨거운 우유 1잔이 전부였으나 어제의 쓰린 속을 풀어주는 듯하여 대만족이었다. 식사를 마친 8시 반경 택시를 타고 시안 북동쪽 변두리에 위치한 진시황 병마용갱으로 달려갔다.
1시간 이상 달려가는 택시 안에서 중국어에 능한 큰형님이 기사에게 “요즘 경기가 어떠냐”고 묻자, 단번에 “부타이하오(不太好, 별로예요)”했다가 다시 “부타이헌하오(不太很好, 정말 안좋아요)”라고 수정해서 답한다. 그만큼 경기가 안 좋다는 말인데, 가는 곳마다 택시기사들이 호객하거나 자신의 택시를 대절해 줄 것을 요청하는 걸로 봐서 택시업계는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인 듯했다.
도착요금은 180위안, 이번 여행 중 최고의 택시요금이었다. 시안의 택시 기본요금은 8.5위안(=1,700원)이고 주행 2km부터 100m당 0.3위안씩 올라가는 듯했다. 참고로 상해의 택시 기본요금이 14위안, 북경이 10위안, 연길은 5위안이니 시안은 중상급 수준이다. 돌아와 위치를 확인해 보니 동북쪽 끄트머리로 웨이난(渭南)시가 더 가까울 정도의 외곽이었다.
예상 못 한 고액의 택시비와 입장료(120위안=2만4천원)와는 달리, 예상한 대로 인파로 북적인다. 깃대를 든 단체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긴 줄을 잇고 있어서 시안 최고의 관광지답다. 잔뜩 기대를 안고 사람들 사이에 떠밀려 1호갱(坑) 안으로 들어서니 책에서나 보았던 도용(陶俑)들이 종횡으로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드문드문 시야에 들어온다. 캬아~ 장관이다. 더 가까이 다가가 보려 했으나 2중3중 인(人)의 장막을 뚫기가 만만찮았다. 겨우 까치발로 사진을 담기 시작했다. 시계방향으로 동선을 따라 한 바퀴 돌려는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측 모퉁이에서 좌절되고 만다. 겨우 몇 컷 사진을 더 담았을 뿐,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결국 한 바퀴 돌려는 계획은 포기하고, 고개를 돌려 입구로 나와 버렸다. 안에 갇혀있을 형님에게는 내 처지를 전화로 알리고 천천히 나머지 2,3호갱으로 가 봤더니 1호갱의 아비규환 정도는 아니어서 제법 여유 있게 관람을 이어갔다. 2,3호갱과 이후 찾아간 박물관에서 만난 군 간부의 도용들을 코앞에서 살펴보며 그 섬세함으로 말미암아 마치 2천 년 전 시대로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진시황 병마용 도용(陶俑)은 1974년 서안 외곽 시골마을에서 가뭄을 해갈하기 위해 우물을 파던 농부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2,200여 년간 긴 잠을 자던 진나라 병마 대군이 일시에 깨어난 것이다. 이곳은 진시황릉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으로, 세계 8대 경이로 손꼽힌다. 1호갱의 규모는 길이 230m, 넓이 62m 속에 6,000여 점의 도용과 전차 40여 점이, 1976년 4월 발견된 124x98m 규모의 2호갱에는 병마용 1,300여 점과 나무전차 80여 점이, 그리고 3호갱에는 군사지휘부로 추정되는 도용들이 발굴 전시되고 있다. 1980년 12월 진시황릉 서북쪽에서 발견된 두 승의 청동거마는 2호갱 옆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모든 병마도용들이 실물 크기(兵높이 175~196cm, 馬높이1.5x길이2m)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복장은 물론 동작이나 표정, 손금, 머리카락 심지어 신발바닥에 이르기까지 실아 있는 듯이 세밀히 새겼고, 햇빛에 노출되어 색이 바래지기 전에는 청·황·녹·갈색에 흑백이 섞여 한 편의 정교한 예술작품 같았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감탄이 절로 나긴 하지만 진시황 생전의 폭정에 고초를 겪었을 백성들이 사후에까지 시달렸을까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사여생(事死如生), 죽어서도 영원히 살아있기를 염원했던 진시황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여산(驪山) 깊은 곳에 묻혀있다. 중국 문화재 당국은 향후 문화재 발굴·보존 기술이 충분히 발전할 때까지 황릉 발굴을 미루고 있다고 한다. 진시황릉과 병마도용 조성 이후 함양을 점령한 항우가 병사 30만 명을 동원해 도굴했고, 황소의 난 때에도 도굴을 시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서 얼마나 온존할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수천 수백의 병마도용을 보며 오히려 인생무상을 떠올렸다면 비단 나만의 감상이었을까.
양귀비 온천과 시안사변, 화청궁 화청지(華淸池)가 있는 화청궁은 병마용갱에서 멀지 않은 여산 기슭의 온천 행궁지이다. 택시로 15분 거리다. 북쪽광장에 현종과 양귀비가 춤추고 노는 조각상과 칠월칠석날 비익조 연리지가 되자고 맹세했다는 부용호 장생전(長生殿)이 있다. 그 외에 연화탕(蓮花湯)·해당탕(海棠湯)·성신탕(星辰湯)·상식탕(尙食湯) 등 목욕탕 유적지가 있다. 이 중 연화탕에서 당 현종이, 해당탕에서는 양귀비가 목욕을 했다고 한다. 성신탕은 당 태종의 전용 목욕탕으로 지어졌고, 상식탕은 궁궐음식을 책임지던 관리들이 이용했던 온천탕이라고 한다. 참고로 중국 4대 미인은 서시(西施)·양귀비(楊貴妃)·초선(貂蟬)·왕소군(王昭君)인데,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그린 백거이의 시 「장한가(長恨歌)」의 야간공연이 4월에서 10월 사이 화청지에서 펼쳐진다고 한다. 시간이 넉넉한 유객들은 여산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를 이용해 산 정상을 구경할 수도 있다.
온천탕 동쪽 오간청(五間廳)은 1936년 서안사변이 일어난 곳으로 그해 12월 12일 동북군 장학량이 장개석을 급습 체포, 병간(兵諫)을 통해 국공합작을 이끌어낸 근대역사의 산실이다. 사건인즉, 중화민국 주석이자 총사령관인 장개석이 12월 7일 서안에서 회의를 주재하며 동북군 사령관 장학량에게 홍군을 공격하도록 압박했으나, ‘항일구국(抗日救國)’이 먼저라며 반발한 장학량 일당은 이날 새벽 이곳 오간청에 머물던 장개석을 총격전 끝에 체포해 구금했다. 이 일로 연안에서 홍군측 주은래, 남경에서 국민당측 송미령이 달려와 막후협상 끝에 ‘홍군을 국민당군에 편입하는 조건으로 협력한다’는 장개석의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 1979년 전두환 일당이 일으킨 12.12 쿠데타도 이날의 병간(兵諫)을 구실로 삼았다고 하지 않는가.
섬서역사박물관 병마용갱에서 잡아타고 온 택시기사가 1시간 내로 다시 탑승하는 조건으로 화청궁 바깥에서 기다리기로 해 늦지 않게 나왔다. 대절료는 150위안, 시안 시내의 섬서박물관에 3시 반경에 도착하고 보니 길게 입장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 있다. 한국에서 이미 예약을 해 둔 관람시간은 오후 4:30부터 6:00까지라서 4시부터 줄을 서야 한단다. 하는 수 없이 길 건너 가게에서 중국 과자를 사 먹으며 30분 정도를 때운 후 달려갔더니 벌써 50여 명이 앞서 있다. 안내요원이 65세 이상은 줄 서지 않고 우선 입장이 된다고 귀뜸하자 큰 형님이 그 말을 알아채고는 가로질러 맨 앞으로 가서 여권을 보여주면서 생년월일을 확인시키자 진짜로 기다릴 필요 없이 입장이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무려 대기시간 30분가량을 절감한 것이다.
섬서역사박물관은 ‘中央殿堂 四隅崇樓’(중앙전당 사우숭루; 중앙에 전당이 있고, 네 개 모퉁이 건물이 누각을 호위한다)라는 당 건축양식에 따라 1991년 6월에 개관된 성급 박물관이라서 시내 박물관 중 유일하게 입장료가 없는 곳이다. 선사부터 현대까지 출토된 유물 37만 점 소장되어 있다. 건물 입구의 돌사자상은 현 셴양국제공항 부근 측천무후 모친 양씨의 묘 순릉(順陵) 앞에 놓인 거대한 석상을 복제한 것이라 한다.
제1전시실에는 선사시대 남전원인(藍田原人) 유골 머리와 신석기 문화의 반파(半坡)유적지 그릇, 진나라 두호부(杜虎符; 작은 크기의 동물 모양 전체에 글자를 새긴 징표) 등이, 제2전시실에는 한 고조 황후 여치의 옥새(玉璽), 흉노족 장식품 금괴수(金怪獸), 환관 채륜의 종이발명 설명문, 위진남북조의 불상 등이, 제3전시실에는 당삼채(唐三彩) 황·녹·백색 유물, 자기와 금은공예품 등이, 제4전시실에는 1970년 서안 하가촌(何家村) 공사장 출토 1천여 점, 舞馬街杯紋銀壶(춤추는 말 무늬 은주전자), 鑲金獸首瑪瑙杯(금테 두른 동물 두상 마노잔), 鴛鴦蓮金碗(원앙과 꽃잎무늬 금사발) 외에 장회태자묘 사신도(使臣圖), 영태공주묘 궁녀(宮女)도, 의덕태자묘 궐루(闕漏)에도 등 당나라 벽화들이 선명하여 눈을 즐겁게 했다.
이로써 시안의 주요 관광지 세 군데를 이번 여행 중 가장 비싼 비용으로 돌아보았다. 게 눈 감추듯 휙 돌아본 것 같으나 그래도 2만 보 이상은 걸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저녁을 먹으러 뒷골목 식당가를 어슬렁거릴 때 한 가게 앞에서 ‘1986’ 1L 용량 캔맥주를 무료로 나눠주는 홍보 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 손에도 하나씩 쥐어주었다.(덕분에 돌아오는 날까지 매일 하루 여정을 풀어주는 청량제가 되어 주었다) 골목 식당에서 시안 와서 처음으로 중국식 집밥(청경채돼지찜+백반)으로 식사했다.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 혼자 놀고 있는 어린 여자애를 보고 빵·과자를 선물로 사 주었더니 안주인이 무척 고마워한다. 이날 세 사람의 밥값은 45위안(=인당 3천원), 아이 과자 선물은 30위안(=6천원), 밥값이 너무 싼 건지, 과자 값이 비싼 건지 잠시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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