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노인의 중국 시안(西安) 여행기 1일차

신완섭 기자 | 기사입력 2025/10/22 [08:47]

세 노인의 중국 시안(西安) 여행기 1일차

신완섭 기자 | 입력 : 2025/10/22 [08:47]

  10월 12일(일)부터 10월 18일(토)까지 6박 7일간 다녀온 세 노인의 중국 여행기를 소개한다. 60대 중반을 갓 넘긴 나와 달리 동네 형들 두 분은 올해 73세, 71세로 나를 포함하니 세 사람의 평균나이가 70.3세가 나온다. 별수 없이 나도 노인 대열에 끼인 채 여행에 합류했다. 

 

  2025/10/12 일요일 흐리고 비

  (방문지_서원문, 비림박물관, 종루/고루) 

 

  출발에서 도착까지

  새벽 4시 반에 집을 나서 중국 시안 셴양(咸陽)공항에 도착한 현지시각이 11시 반경, 1시간 시차를 무시한 비행시간이 꼬박 3시간 반이다. 서둘러 시안북역(站)까지 전철로, 다음에는 택시로 이동해 서안성벽 남문로터리 서원문(書院門) 거리의 시탕(西唐, Seetang Inn)객잔 숙소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1시 반경, 짐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시안 엿보기

  시안은 관중평야(關中平原) 한가운데 있으며 서쪽에는 황하, 북쪽에는 위수와 경수가 흐른다. 관중평야는 뤄양(洛陽)의 5배 넓이로서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고 불린 옥토의 땅이었다. 고래로부터 “관중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得關中者得天下)”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요충지였으며, 이를 증명하듯 주나라에서부터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 13개 왕조의 수도가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 서원문 입구 (사진=신완섭)


  시안의 인사동, 서원문(書院門)

  서원문 거리는 서체 및 문방사우를 파는 거리로 중국 4대 유명한 서책거리이다. 명,청 시대의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서안의 대표적인 거리이다. 길 양옆에는 주로 서예용품, 그림, 골동품, 악세서리, 의복 등과 서안 일대 특산품을 판매하는 가게와 좌판들이 즐비한 문화거리로 서울로 치면 인사동 거리이다. 이곳이 유명한 서책거리가 된 것도, 거리 이름이 서원문이 된 것도 이곳에 시안의 최고 서원이었던 관중서원(關中書院)이 있기 때문이다.

 

▲ 서원문 옆 향토음식 뱡뱡면 식당 (사진=신완섭)

 

  섬서 명물요리, 뱡뱡면

  옥편에도 안 나오는 뱡 자는 '국수이름 뱡'이라는 미등록 한자 방언으로, 穴+言+幺+幺+馬+長+長+心+月+刂+辶 순서로 모양이 복잡하고 특이한 총 58획의 난해한 글자다. 이곳 섬서성의 10가지 특산물 중 하나로 현지인들은 유포처몐(油泼扯面)이라고도 부른다. 벨트와 같이 넓은 폭의 면발을 만들 때 바닥에 통통 때리며 튀기는 모습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고춧가루를 많이 넣어 맵게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이곳의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먹던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에 끓는 기름을 부어주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고춧가루가 튀겨지면서 묘한 향을 느낄 수 있다. 2014년 방중했던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에게 시진핑 주석이 대접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가격이 25위안(=5천원) 정도이면서 매운맛을 좋아하는 우리 입맛에 잘 어울리고 이름의 유래가 ‘악귀를 쫓아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니 시안을 찾으면 꼭 먹어봐야 할 별미이다.

 

  필수관람 코스, 비림(碑林)박물관

  식사를 마친 뒤에도 여전히 비가 온다. 비를 피해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비림(碑林)박물관으로 향했다. 시안에서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할라치면 단연 ‘碑林(비석의 숲)’이다. 역사·문화에 초점을 맞춘 여행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한나라 시대부터 근대까지 4천여 개 비문, 1천 개가 넘는 비석을 7군데로 나눠 전시실을 운영한다. 북위부터 송대에 이르는 석각 150건은 별도 예술관에 전시, 그 역사는 1천 년에 이른다. 당나라 때 세운 공묘는 원래 성곽 남쪽에 있었다. 북송 철종 때인 1087년 옮긴 자리가 현재의 비림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 대진경교유행중국비 정면 모습 (사진=신완섭)


  이곳은 고대 중국의 비석을 모아 조성한 곳으로 당 말 혼란기에 중요한 비석들을 보호하기 위해 문묘에 집중시켰으며 북송 1087년 유교 경전을 새긴 개성석경비(开成石经碑) 보관 건물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비림에 있는 비석들은 시대 순서가 완전하고 각종 서법의 모범이 되었던 중요한 비석들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동시에 고대 문헌들을 살펴볼 수 있는 도서관 성격을 갖는 곳이기도 하다. 비석들 중 경교, 즉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중국 전래에 관한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教流行中國碑), 당 건중 2년 781년 작)가 유명하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전시실마다 돌이 풍년이다. 광물 집합체가 역사로 화장하여 사랑받는 유물로 재탄생한 현장이다. 전시실을 제대로 다 보려면 도시락 싸 들고 다녀야 한다. 모두 볼 수 없을 땐 서예 작품 전시실이 최고다. 송나라 4대 서예가 중 소식(蘇軾)ㆍ황정견(黃庭堅)ㆍ미불(米黻)을 만날 수 있다. 소식과 미불의 진품 필체도 탁월하지만, 황정견의 시첩(黄庭坚诗帖)이 최고 인기 상품이다. 다섯 부분에 나눠 새긴 칠언율시가 가지런하다. 탁본도 할 수 있는데, 대략 450위안(=9만원) 정도다. 청나라 9대 황제인 함풍제 시대 석각으로 행서체가 아주 아름답다. 황정견 작품으로 추정되나 위작이라는 소문도 있다. 

 

▲ 비림박물관 내 편액 (사진=신완섭)


  돌 위에 아로새긴 문화를 읽으면 역사가 보인다. 돌이 곧 역사책이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자고 덤빈다. 온종일 머물러도 지겹지 않을 것 같으나 적당히 보고 이제 돌아가야 한다. 이때 정자에 걸린 비림(碑林) 편액에 잠시 시선이 멈춘다. 자세히 보니 碑 자 오른쪽 위에 삐침이 없다. 어느 사전이나 족보에도 없는 글자 ‘????’가 됐다. 오타(?)의 주인공은 임칙서다. 청나라 말기 아편을 엄금할 것을 진언해 1839년 흠차대신(欽差大臣)으로 발탁됐다. 아편을 모조리 몰수하고 영국인을 추방했다. 그 결과 영국은 아편전쟁을 일으켰고 유약한 청나라는 강화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 임칙서의 정신세계 특별전 (사진=신완섭)


  임칙서는 관직을 박탈당한 후 실크로드를 거쳐 신장 위구르로 유배됐다. ‘다시 돌아와 나머지 삐침을 찍겠다’는 귀환 의지였다는 설화가 나돌았다. ‘머리에 썼던 관모가 떨어진 비통함’을 비유했다고도 했으나 그는 끝내 유배길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별실에서는 임칙서를 기리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생략’을 버젓이 편액 碑林에 남겨둔 진짜 이유는? 비림 안에 답이 있다. 비림 석각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삐침 없는 글자가 적지 않다. 당 명필가 안진경의 작품 다보탑비(多宝塔碑)와 안근예비(颜勤礼碑)의 碑 자에 모두 삐침이 없다. 유공권의 작품 현비탑비(玄秘塔碑)도 마찬가지다. 서예를 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진경을 모르면 간첩인데, 그가 두 번씩이나 실수를 했겠는가. 당시로는 삐침 없는 글자가 흔했다. 그러니 구구절절 떠도는 임칙서의 삐침 생략 사연들은 그를 가엽게 여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서 연유했을 것이리라. 장장 2시간가량 관람 끝에 박물관 문을 나섰다.

 

▲ 종루 야간 모습 (사진=신완섭)


  시안의 상징, 종루/고루

  남문로터리에서 북쪽으로 1km 정도 걸으면 시안 중심 종루(鐘樓)에 이른다. 이미 어두워진 도로 한복판에 환히 조명을 받으며 우뚝 서 있어서 당나라 시대의 영화가 그대로 살아나는 듯한 감동을 준다. 주변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백화점과 식당, 호텔 등이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조명에 종루가 불타기 시작한다. 종루는 명 초기 1384년부터 지금의 자리에 위치했다. 거의 640년 세월 동안 변함없이 웅장하다. 종소리는 성문을 여는 신호로서 사대문 모두에 들리도록 울렸다고 한다. 지금은 입장료 35위안(고루 포함시 50위안)을 받는 효자 유물이다. 차량들은 그저 물 흐르듯 지나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행락객들로 길거리는 북새통을 이룬다. 

 

▲ 고루 야간 모습 (사진=신완섭)

 

  로터리 형태의 지하도를 건너던 중에 벽에 붙여놓은 전철노선도와 시내 약도를 사진에 담다보니 종루역 일대가 얼추 최고 중심가라는 판단이 서고 서안 전체의 지세를 어느 정도 가늠하게 된다. 그나저나 중국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안내센터 같은 곳은 없는 건가. 지도 한 장 구하기가 어렵다. 궁시렁거리며 서쪽으로 200여m 올라가니 고루(鼓樓)가 나온다. 종루에서 아침을 알리는 종을 쳤듯이, 1380년에 세워진 이곳 고루는 저녁을 알리는 북을 쳤던 곳이다. 내리는 빗소리가 둥,둥,둥,둥.... 북이 울리는 소리 같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1층 가게에서 맥주 2병과 42도짜리 백주 1병을 사와 빗소리를 안주 삼아 마시다 보니 첫날 서안에서의 밤은 깊어갔다. 오후 반나절 짧은 반경에도 걸은 걸음 수가 2만 보가 넘었다. 비림박물관을 샅샅이 뒤진 탓이리라. 피곤해서 떡잠을 잘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양옆에서 탱크 지나가는 소리, 대포 쏘는 소리 등 무차별 코 고는 소리를 쏘아대는 통에 야간 극기훈련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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